국내 이동통신장비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 CDMA장비 시장에서 북미 및 유럽 통신업체가 주도권을 선점함에 따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1차 공급실적을 바탕으로 대량공급을 노려온 삼성전자는 물론 1차 입찰 실패 후 신규 진입을 추진해온 LG전자와 현대시스콤 모두 대중국 사업전략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으며 정부와 업계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아시아 CDMA벨트 구축사업도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2차 입찰 현황=지난해 총 1300만회선, 120억위안 규모의 CDMA IS-95A 장비를 도입했던 차이나유니콤은 최근 cdma2000 1x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장비입찰을 진행해왔다. 2차 입찰은 지난해 차이나유니콤 본사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진행됐던 1차 입찰과 달리 30여개 각 성 사업자별로 이뤄져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차 입찰에서 장비공급권을 따낸 삼성전자, 노텔네트웍스,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에릭슨, 모토로라, 중싱통신을 비롯해 LG전자, 현대시스콤 등 신규 진입을 노리는 국내 업체들도 이번 2차 입찰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북미업체의 선전=지난달부터 성별로 본격적인 장비입찰이 진행되는 가운데 21일(미국 시각) 모토로라·루슨트·노텔·에릭슨 등 4개사가 차이나유니콤과 지난해 1차 입찰 발주량(120억위안 규모)과 맞먹는 총 102억7100만위안(약 1조7460억원) 규모의 cdma2000 1x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입찰에서는 북미권 업체인 모토로라·루슨트·노텔 등 3개사가 계약 총액 중 90%가 넘는 물량을 차지해 향후 중국 CDMA시장에서 북미권 업체의 강세를 예고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에릭슨은 지난해 1차 입찰에서는 15% 수준의 물량을 수주했지만 이날은 북미권 업체들에 밀려 수주물량이 10%에도 못미쳤다. 더우기 이번 계약은 차이나유니콤의 양시안주 회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이뤄졌고 계약 체결식에는 도널드 에번스 미 상무부 장관도 참석한 점을 미뤄볼 때 향후 중국시장에서 북미권업체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업체의 부진=지난해 1차 입찰을 통해 총 145만회선 1억6000만달러 규모의 CDMA장비를 공급했던 삼성전자는 이번 2차 입찰에서도 지난해 공급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을 벌여왔지만 현재까지 100만회선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장비를 공급한 톈진, 푸젠, 허베이, 상하이 등 4개 지역과는 별도로 신규 지역에도 공급을 추진했으나 아직은 기존 공급지역 외에는 새로운 고객을 찾지 못한 상태다. LG전자와 현대시스콤 등 신규 진입을 노려온 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1차 입찰 막판에서 가격경쟁력에서 뒤져 장비공급권 확보에 실패했던 LG전자는 이번 2차 입찰만큼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목표 아래 전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공급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시스콤도 최근 계속되는 국내사업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중국진출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해 향후 중국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번 입찰에서 보여진 것처럼 장비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집중적으로 지원해온 중국 CDMA장비 사업이 난항에 빠진 것은 해외업체들의 적극적인 공세에 대한 국내 업체의 대응능력 부족 탓으로 풀이된다. 해외업체들은 최근 세계 통신장비시장의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CDMA시장 공략에 전력을 기울여왔고 이 과정에서 가격 측면에서도 저가공세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정보력 측면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해외업체에 뒤졌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업체들은 미국에서 이뤄진 해외업체의 계약체결에 대해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신규 진입을 노리는 업체들은 차이나유니콤이 신규 업체의 진입을 꺼리고 있다는 점을 알고도 이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CDMA 수출전략 재수정 불가피=입찰 참패의 불똥은 정부에도 떨어졌다. 정보통신부는 중국을 축으로 인도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을 CDMA벨트로 묶어 국산 장비를 집중 공급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첫 관문인 중국에서부터 계획이 틀어지면서 CDMA 수출목표는 물론 전략 전체에 대한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부의 CDMA 세일즈 외교능력도 새삼 도마위에 올랐다. 정통부는 차이나유니콤이 한국 업체를 배제한 입찰계약 발표내용이 알려진 22일까지도 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정통부는 그간 정부 채널을 통해 CDMA 세일즈 외교를 활발하게 전개해왔다고 자신했으나 실제로는 ‘사상누각’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세일즈 외교의 중량감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에 차이나유니콤의 입찰 발표는 장쩌민 국가 주석의 미국 방문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국가의 통제가 심한 중국 기업들의 특성상 정치외교적인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간 대중국 CDMA 외교의 주체는 정통부의 장·차관과 국장급이었으나 이를 부총리급 이상의 고위급으로 높여 전방위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업계 일각에서 제기됐다. 중국의 기술도입 전략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 기본적으로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기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복수 표준을 가져가거나 핵심 기술의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업체를 배제한 것도 핵심 기술을 이전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중국에 어느 정도까지 기술을 이전해줄 것인가를 기업과 정책당국이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통부는 이번 차이나유니콤의 입찰 결과가 CDMA 수출전략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으며 조만간 업체들과 함께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차후 입찰에서 또한번의 참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대책 및 전망=일단 해외업체들이 차이나유니콤과 전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국내 업체의 입지는 좁아질 전망이다. 더욱이 이번에 발표된 계약이 내년 2분기까지의 공급량이어서 당분간 큰 규모의 추가 발주는 없을 것으로 보여 국내 업체로서는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됐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중국정부의 강력한 후원을 등에 업고 있는 중싱통신은 빠져있어 이 회사가 향후 물량을 수주한다면 국내 업체의 중국 사업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제외한 LG전자 및 현대시스콤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업체들이 저가공세를 비롯해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이같은 다국적 공룡기업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업계와 정부 차원에서 보다 긴밀한 공조체계를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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