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통해 얻는 교훈은 올바른 미래를 선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국가정보화의 미래에는 많은 선택들이 놓여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정보화는 충실한 과거를 토대로 이뤄지며 미래 정보화도 과거의 연속선 상에 있다. 정보 인프라가 그렇고, 국민들의 정보화 역량이나 법제도가 모두 미래 정보화의 중요한 기반이다.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정보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어느 순간에 현재의 정보기술이 과거가 되고,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정보기술들이 금방 현실로 다가온다. 그 결과, 자칫 법제도가 정보기술의 발전 추세에 뒤떨어질 수도 있고 새로운 목표에 대한 인식 및 비전 부재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2002년은 우리나라 정보화의 분수령이다. ‘제3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이 수립돼 2006년까지 정보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게 됐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아직도 정보화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산적했고 미처 정책적으로 대응하기도 전에 유비쿼터스라는 새로운 정보기술 패러다임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보화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조기 구축한 것은 가장 두드러진 성과다. 당초 계획보다 2년 앞선 2000년에 이미 전국 144개 주요 지역에 초고속광케이블망이 구축됐다. 전국 읍지역(197곳) 100%, 면지역(875곳) 71%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도 구축됐다. 이같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은 국가정보화의 엔진으로 작용해 모든 공공기관과 학교가 인터넷으로 연결됨은 물론이고 전국민의 절반이 넘는 2500만명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 정보화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부터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기본계획’과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축 종합추진계획’ 등을 확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법적근거로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한 뒤부터다.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초고속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이 시작됐고 제1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과 정보화 촉진기금 설립을 통해 종합적인 국가정보화 추진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하지만 3회에 걸쳐 추진된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은 우리나라 국가정보화의 발전 과정과 방향상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1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이 국가정보 구현을 위해 물적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였다면 99년에 수립된 제2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은 IMF 사태로 타격을 받은 국가경쟁력을 정보화를 통해 회복하려는 위기관리적 계획이었다. 올해 4월에 확정된 제3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은 국가정보화의 차세대 기반 구축과 함께 정보화 효과의 질적 확산을 위한 성찰적 계획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1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의 경우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측면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종합적인 사업조정과 평가권한을 갖는 범정부적 총괄기관(inter-agency)의 부재였다. IMF 사태로 인한 경제난 극복과 지식기반사회의 도래를 배경으로 한 제2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Cyber Korea21)은 지식기반국가의 건설과 전자공간(cyber space)을 연계했다는 점에서 올바른 비전을 수립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정보통신망의 고속화 및 고도화와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 구현을 위한 국민 정보화 교육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2차 정보화계획을 통해 추진된 많은 정보화사업들은 사업성과 미비, 부처간 갈등과 중복투자, 추진체계와 사업방향의 혼선, 시스템간 상호운용성 및 접속성 부재 등과 같은 문제점를 드러냈다. 질적 성과가 미흡했고 IT 벤처기업의 거품도 거르지 못했다. 현실과 연계되지 않은 전자공간 중심의 정보화가 갖는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수립된 3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은 정보화의 생산성과 질적 제고를 위한 성과중심의 사업추진, 신산업 토양 조성, 세계적 수준의 정보화 선도를 기본방향으로 잡고 있다. 사업내용 면에서 IPv6나 무선인터넷과 같은 차세대 기술을 반영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고도화와 인터넷기반 조기구축,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정보화, 모발일 정부기반 구축 등은 발전적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정보화사업들이 기존의 사업들을 수정했거나 과거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다. 추진체계 면에서도 이전과 다름없이 국가CIO나 정보화수석 제도도입, 정보화 영역과 관련된 부처간 갈등 해결, 차세대 정보화정책 환경에 부합하는 정부와 민간간의 역할 정립 등의 노력이 부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3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의 한계는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정보기술 패러다임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미 미국, 일본, 유럽에서는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술이 국가정보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수용되고 있으며 국가별로 정부와 기업의 정책적 대응과 투자, 연구개발, 시범사업이 진행중이다. 정보통신 관련 학계와 연구소에서도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정보통신 중심 국가이다. 그러나 지금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가입자수가 99년 세계 8위에서 작년에는 후발 국가의 추격에 밀려 22위로 하락한 것은 좋은 예다.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 보급수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밀려 관심의 대상에서조차 밀려날지도 모른다. 정부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대응시기를 놓치는 것은 회복하기 힘든 후발주자로서의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세계 정보통신 선도는 국가정보화 차원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술을 얼마나 빨리 개발, 활용, 상품화하느냐에 달렸다. 우리나라는 1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통해 과거 모뎀과 같은 외나무다리밖에 없었던 전자공간으로 가는 길을 초고속고정보통신망이라는 고속도로로 바꿔놓았다. 2차 계획에서는 더 많은 대용량 고속도로를 놓고 전자공간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3차 계획에서는 차세대 고속도로를 이중, 삼중(광대역, 유선, 무선)으로 놓고 전자공간의 생산적인 개발과 질적고도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이제 3차 계획은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해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을 통합하고 사람, 사물,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해 제3공간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국립청주과학대 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새로운 국가정보화 영역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술은 기존의 정보기술로는 서비스가 불가능했던 영역에 도전한다. 이른바 유비쿼터스 혁명으로 새로운 정보화의 영역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리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정보를 문자, 음성, 그림, 동작 등을 이용해 주고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고받은 정보들은 의미가 있거나 오감으로 지각 가능한 영역에만 한정돼 있다. 종이, 신문, 라디오, TV, 영화 등 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은 더욱 대규모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디어 상의 정보들은 한번 만들어져 이미 고정되거나 편집된 것들이다. 물리공간에서 사람, 환경, 사물, 장소 간에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 정보들은 관심과 능력 밖의 정보며 비정보화 영역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디지털 혁명으로 등장한 정보미디어들은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더욱 더 빠르게 대용량, 양방향으로 정보를 유통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비정보화 영역들은 컴퓨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정보화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술의 등장으로 장소, 사람, 사물, 컴퓨터가 모두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공간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한 정보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감지, 추적, 전달된다. 반대로 이전까지 불가능 했던 보이지 않은 컴퓨터를 통해 사람, 장소, 사물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해졌다. 유비쿼터스 기술의 등장은 국가, 기업, 개인이 관리하는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공간과 그 속에 존재하는 사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정보화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새로운 영역들을 찾아내고 유비쿼터스 기술을 활용해 이를 구현하는 것이 미래의 정보화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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