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 금을 긋고 그 금에 걸려 넘어지는 동물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은 정보기기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첨단 사무실의 각종 정보기기들은 수많은 선으로 연결돼 있고 인간은 그 선에 얽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 IT의 화두는 어떻게 복잡한 선들을 잘라 버리고 무선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인 가에 집중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다는 약속은 정보혁명이 가져올 유토피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구호였다. 유비쿼터스 혁명은 ‘언제’ ‘어디서나’에 더해 ‘무엇이라도’를 추가로 약속한다. ‘언제’ ‘어디에서나’라는 구호가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라는 구호는 단말기의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물리적 기기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개방성을 의미한다. 유비쿼터스 혁명은 언제, 어디서나 전자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뿐만 아니라 물리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기기나 사물에도 접근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한다. 이러한 자유는 모든 물리적 기기들과 디바이스 그리고 사물들이 전자공간에 연결됐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기기들을 유선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결국, 어떤 형태로 사물들을 전자공간에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유비쿼터스 혁명은 유선 위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 유비쿼터스 혁명은 점조직과도 같은 무선망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 전파는 입자로서의 물리적 특성과 파동으로서의 정보적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 전파라는 무선 매체에 의지할 때 유비쿼터스 혁명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으며 무선 매체에 의해 창출되는 제3공간만이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을 통합할 수 있다. 이같은 필요성에 따라 최근 무선 정보통신 기반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선 정보통신 기반은 그 범위와 이동성을 기준으로 센서, 홈랜, 무선 인터넷, 이동통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각기 고유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해 왔다. 센서는 근접 거리에서 디바이스의 상태를 감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무선ID(RFID)가 부착된 상품은 계산대를 통과할 때 점원에게 가격을 말해주고 택배 직원에게는 어느 가정에 배달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스마트 배지를 부착한 치매 노인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로 곳곳에 장착된 감시시스템은 노인의 위치를 추적한다. 물리공간상의 기기를 전자공간으로 연결시키는데 있어 센서는 가장 기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센서로 인해 물리공간은 비로소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무선 홈랜은 집안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 프린터, 헤드폰, 카메라, 오디오세트, 텔레비전, 휴대폰 등을 무선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선 홈랜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로는 적외선 통신에 의존하는 IrDA, 전송거리가 50m를 넘는 홈RF(Home Radio Frequency), 그리고 블루투스 등이 있다. 과거,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무혈 통합한 바이킹 왕에 대한 애칭에서 비롯된 블루투스는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정보기기들을 조용히 통합시키고 있다. 블루투스를 활용하면 노트북과 PDA 그리고 휴대폰에 기억되는 모든 전화번호, 주소, 메모 등을 자동으로 일치시킬 수도 있다. 정보기기들끼리 자발적으로 통신을 주고 받으며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이러한 점에서 블루투스는 ‘감추어진 컴퓨팅(hidden computing)’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비록 블루투스는 1Mbps 의 속도와 10m의 전송거리로 제한되지만 그 개방성과 시장성 그리고 종합성으로 인해 홈랜의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선랜은 IEEE802.11 규격을 기초로 10Mbps에서 54Mbps에 이르는 고속의 무선 인터넷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100m에 이르는 넓은 전송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들어 공중 무선랜까지 등장해 무선으로 초고속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무선랜은 빌딩이나 대학교의 캠퍼스, 병원, 아파트 단지 등에서 노트북이나 PDA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무선랜은 넓은 영역의 물리공간을 통째로 전자공간에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제3공간이라는 신천지가 형성된다. 무선랜의 범위안에 있는 어린이들은 무선 인터넷으로 부모와 영상통신을 주고받는다. 어린이들이 무선랜의 범위 밖으로 이탈할 경우 부모들은 어린이가 지니고 있는 PDA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받는다. 어린이와 부모는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무료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통해 부모는 도처에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유비쿼터스 IT는 사용자로 하여금 모든 장소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광범위한 이동통신도 유비쿼터스 혁명을 완성하는데 필수적인 무선기반이다. 글로벌한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IMT2000(3세대)은 인터넷처럼 개방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다만, 이 새로운 네트워크는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터넷과 다르다. 위성통신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한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더 이상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이동하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사막의 모래 폭풍과 함께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유목민처럼 유비쿼터스 혁명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선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다.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창출되는 제3공간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라도’ 접근해 추적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다. 제3공간은 끊임없이 이동하면서도 감추어져 있는 조용한 공간이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국립청주과학대 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센서의 발전 구도 센서는 제3공간과 무선통신기반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제3공간이 얼마나 빠르게 구축될 것인가는 센서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할 것인가에 달렸다. 미래의 센서기술은 세가지 단계를 거쳐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번째 단계는 센서가 생활공간에 확산되는 단계다. 정보가전을 비롯해 소파와 침대 그리고 도로 곳곳에도 작고 저렴하며 소비전력이 낮은 센서들이 내장된다. 이들은 독립된 센서로서 고유의 기능을 수행한다. 두번째 단계는 이들 센서가 연결되는 단계다. 기존의 전력선과 전화선을 활용한 네트워킹이 가속화되고 무선랜이 보편화될수록 정보기기 속에 숨어 있던 센서들은 단일 네트워크로 통합된다. 네트워크 속에 편입된 센서들은 각자의 정보를 주고 받는다. 에어컨의 센서는 소파의 센서를 통해 실내 온도를 알아내고, 욕조에 부착된 센서로부터 목욕이 끝나는 시간을 확인한다.
마지막 발전 단계는 각종 센서들의 정보가 종합화되는 단계다. 센서들이 제공하는 개별적인 정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던 종합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단계다. 교량에 부착된 수많은 센서들의 개별 정보는 통일된 의미로 형상화된다. 교량의 어느 곳에 문제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발견하기 위해서는 개별 정보들이 스스로 종합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같은 센서의 발전 단계는 추상화의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원시 정보들은 추상화 과정을 통해 활용 가능한 정보로 변화한다. 이 과정은 역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추상화된 정보를 근거로 각 센서에 구체적인 명령을 전달할 수 있다. 추상화를 통해 센서는 물리공간을 전자공간의 세계로 끌어 올리고 구체화 과정을 거치며 전자공간의 의미를 물리공간에 투영한다.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을 연결하는 기초단위로 살아 움직이는 센서는 이미 그 자체로 제3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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