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등급분류 전면 시행이 불과 보름앞으로 다가왔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와 관련, 최근 공개 세미나와 업계 간담회를 잇따라 개최하는 등 막바지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등급분류 일정이 구체화되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히 영등위의 등급분류 기준안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업계 CEO들은 등급분류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의 사회적 부작용을 해소한다는 근본 취지는 좋지만 자칫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영등위가 이해 당사자인 업계의 목소리를 보다 폭넓게 수렴하지 않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고 한다. 윤리규제와 산업발전의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분명 이런 불만들이 해소돼야 한다. 전자신문은 그동안 등급분류제도 도입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업계 CEO들의 목소리를 담는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더이상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영등위와 업계가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합의점을 찾자는 취지에서다. 전자신문 원철린 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좌담회에는 그동안 물밑에 맴돌던 업계의 솔직한 의견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긴급 좌담회 내용을 쟁점별로 지상중계한다.
<토론자> 김범수 NHN 사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방준혁 넷마블 사장 백일승 제이씨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손승철 위즈게이트 사장 원철린 전자신문 문화산업부장
사전 등급분류가 필요한가 ◇백일승(제이씨엔터테인먼트 부사장)=업계의 솔직한 심정은 등급분류가 분명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산업이 지난해 3000억원대 시장으로 급팽창했다고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육성책은 고사하고 규제책에 해당하는 등급분류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에 대해 업계의 불만이 높다. ◇김택진(엔씨소프트 사장)=온라인 게임은 국내 게임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분야다. 사전 등급분류는 온라인 게임의 사회적 부작용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다분히 마녀사냥식으로 진행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온라인 게임은 부정적인 측면과 반대로 여가활용, 교육효과 등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면서 사전 등급분류를 강행하다 자칫 산업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손승철(위즈게이트 사장)=온라인 게임 시장규모가 3000억원대로 아직 적다고는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한게임이나 넷마블과 같은 게임포털사이트의 경우에는 이미 1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이제 온라인 게임업체들도 윤리문제와 같은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이번 등급분류를 통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장기적으로 산업발전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원철린(전자신문 문화산업부장)=온라인 게임의 경우 처음으로 등급분류제도가 도입되면서 규제가 강화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심의가 완화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온라인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음비게법상에 온라인 게임의 사전 등급분류에 대한 조항이 명시돼 있는 마당에 등급분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 온라인 게임의 부작용이 이미 공론화된 시점에서 무조건 등급분류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도 업계에 도움되지 않는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상충될 수밖에 없는 윤리규제와 산업보호라는 두마리 토끼를 따라 잡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등급분류 기준을 만들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사전 등급분류 시점이 문제다 ◇방준혁(넷마블 사장)=등급분류 기준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사전심의인가 사후심의인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온라인 게임은 유저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완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서비스 이후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전심의를 통해 등급분류를 할 경우 많은 한계를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범수(NHN 사장)=온라인 게임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전, 사후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사전심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몫으로 두더라도 사후에 발생하는 문제는 업계가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범수=베타서비스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심의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게임은 서버에 연동돼야만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손승철=지금까지 몇몇 게임들은 사전심의을 받아 왔다. 하지만 대개 시험서비스에 들어간 뒤에 심의를 받은 것으로 안다. 사전 등급분류에서 사전의 의미를 게임이 서비스되기 전의 의미라기보다 일정한 베타서비스 기간으로 상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베타서비스 3∼6개월 정도를 사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백일승=서비스 이전을 사전 심의기간으로 두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3∼6개월의 기간을 두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경우 베타서비스도 개발과정의 일환으로 본다. 따라서 상용서비스 직전까지를 사전 심의기간으로 두는 것도 생각해볼만하다. ◇방준혁=회원수는 업체의 마케팅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지 게임 완성도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회원수보다는 일정한 베타서비스 기간을 사전심의 기간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원철린=베타서비스 기간을 어떻게 볼것인가가 중요한 일인 것같다. 베타서비스 기간을 개발기간으로 봐야하는 지 아니면 완전한 제품서비스로 봐야하는지도 문제다. 또한 베타서비스 기간이 1년이나 2년 이상 길어지는데 상용서비스 직전까지 허용해 준다는 것도 심의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문제다. 베타서비스 기간동안 심의받도록 한다면 기간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회원수에 따라 기준을 두는 방안 등을 생각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등급분류 기준 이견들 ◇백일승=영등위의 등급분류 기준안에 포함된 PK(Player Killing)는 다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PK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윤리적인 문제가 많이 제기됐지만 지금은 온라인 게임에서 PK는 거의 일반화됐다. 더러는 PK를 하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불가능한 게임이 있는 마당에 PK가 들어간 게임은 무조건 18세이용가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손승철=PK는 유저들의 인지 여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PK는 유저가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PK다. 따라서 유저가 인지할 수 있다면 PK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K존을 따로 만들든지 유저들에게 인지를 시킬 경우 전체이용가로 허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김범수=사행성 게임에 대한 기준도 고려해봐야 한다. 일단 현행법이 정하는 현금 및 현물거래가 있는 게임은 분명히 등급보류 판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게임에 현금 및 현물거래 요소가 전혀 없는 게임도 카드류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18세이용가 판정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고스톱이나 포커 등은 이미 청소년들이 오프라인에서 심심풀이로 즐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금거래가 없다면 카드류 게임도 일반 게임과 같이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로 볼 수 있다. ◇백일승=심의기준이 확정되면 당장 6월부터 이 기준에 업체들이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2∼3년에 걸쳐 만든 게임을 심의기준에 맞춰 불과 한달만에 변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6월부터 등급분류를 시행하더라도 현재 서비스중인 게임에 대해서는 적어도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 ◇손승철=당장 심의가 시작된다면 심의의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 PC게임 심의에서 외산게임보다 국산게임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던 역차별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백일승=심의위원들의 자질도 중요하다. 산업을 살리고 죽일 수도 있는 만큼 엄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등급분류를 사실상 주관하는 문화관광부는 어쨌든 한국 게임산업을 일으킨 주무부처다. 산업발전을 이끌어 온 기조속에서 등급분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방준혁=지금까지 업계가 사회적 책임을 무조건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 업계의 이런 노력을 언론이나 정부에서 크게 부각시키거나 장려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등급분류와 함께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을 확산시키는 데도 정부가 앞장서 주길 기대한다. <정리=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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