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조달(e프로큐어먼트)이 기업과 기관으로 빠른 속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연간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절감하고 인력 재배치를 통한 조직운영의 합리화·시간단축 등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전자조달에 대한 인식이 저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조달시스템은 오프라인기업이 기존 입찰시스템을 인터넷 기반으로 자사 중심의 공급망관리(SCM) 체계로 재편하는 작업을 뜻한다. SCM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자조달은 90년대 중반부터 월마트·GM·델컴퓨터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임이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도 지난 2000년부터 대형 제조업체들이 기업간(B2B) 전자상거래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자조달은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등 기존 e비즈니스 인프라와의 연동을 통해 조달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기업거래 활동 전반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효율성까지 극대화할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전자조달은 특정 대기업이 주도해 협력사들과의 조달 SCM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사설(프라이빗) e마켓플레이스’의 모태로도 여겨지며 주로 공개(퍼블릭) e마켓플레이스와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e마켓은 전통적인 기업간 협력망을 불특정 다수의 개방형으로 넓혀 구매·판매의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추세에서 등장했다. 이 점을 감안해 두 마켓형태를 비교해 보면 전자조달은 현재 조달 중심의 ‘수직적’ B2B 재편전략이고, e마켓은 ‘수평적’ 확대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조달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들은 실제로 구매사의 업무효율화뿐 아니라 공급사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조달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삼성전자·SK(주)·LG전자·LG화학·삼성SDI·금호산업·포스코·지누스·현대모비스 등의 경우 지난해에 기업규모에 따라 많게는 연간 3000억원에서 적게는 1억여원의 비용 절감효과를 거두고 있고 구매를 위해 행하던 각종 단순업무도 30% 이상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장 큰 효과를 본 분야는 온라인 비딩을 통한 구매비용 절감이다. 지난 9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자구매 환경을 갖춘 삼성전자는 연간 3000억원의 구매비용 절감효과를 냈다. 99년 10월부터 통합구매시스템을 운용중인 LG화학도 구매물량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SK이비드닷컴’을 가동, 온라인 조달에 나선 SK(주)의 경우 오프라인 단순업무가 32% 이상 줄었고 방문횟수도 감소해 시간을 절약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냈다. 지난해 9월 전자조달시스템을 본격 가동한 포스코의 경우 연간 2300억원의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고 현대모비스·금호산업 타이어사업무문도 각각 연간 24억원과 1억5600만원의 비용 절감효과를 냈다. 여기에 견적서요청·주문·발주·대금조회 등 구매와 관련된 간접업무도 크게 줄어들었고 이를 관리하는 인력 절감효과도 크다. 각종 비용 절감효과를 본 기업들은 대부분 ERP시스템이나 구매시스템 등 내부 기간시스템과 연동함으로써 효과를 배가시켰다. 삼성그룹 관계사들의 경우는 모두 ERP시스템과 연동되고 있다. SK(주) 역시 공장의 구매요구가 PIMS라는 내부 구매시스템을 거쳐 SK이비드닷컴으로 바로 이어진다. 중간에 별도의 수작업이 필요없다는 점이다. ERP와 전자조달시스템을 연동하고 있는 지누스도 기존 거래처 70여개 업체와 행해지던 모든 구매업무가 100% 처리된다. LG화학은 전자구매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 올 7월 가동을 목표로 구축되고 있는 ERP와의 연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기업에서 전자조달에 대한 완벽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공급처 변화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전자조달을 활용하는 수준은 종전의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공급처를 발굴하는 등 ‘전략소싱’의 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업종별로는 역경매 같은 전자조달의 특정 방식에 매달려 단가인하만을 노리지 말고 공급처와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프로세스 개선을 비중있게 다루는 것도 전자조달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꼽힌다. 이미 내부 ERP와 연동돼 있는 삼성전자가 전략적 소싱시스템 ‘PPDB’를 개발, 공급사와 협력을 강화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대기업 중심으로 도입이 이뤄지고 있는 전자조달시스템의 활용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자리잡혀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내 산업 발달 역사를 보면 산업계를 이끄는 대기업이 시스템을 갖추고 사업을 추진하면 해당 협력업체로 확산되는 경향을 띠었다”며 “전자조달시스템 도입도 최근 이를 활용한 대기업들의 잇따른 효과 입증으로 인해 전방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고 있다. 전자조달은 비단 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는 9월부터는 연간 64조원(2000년 기준) 규모에 달하는 공공부문에도 전자조달이 본격 적용된다. ‘정부 전자조달(G2B) 사업’이라고도 하는 공공부문 전자조달제도는 최신 정보기술을 이용해 조달관련 절차를 정보화하고 이를 통해 거래투명성과 기업·정부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전자조달사업은 지난 4월 사업의 핵심인 G2B포털 시스템의 운용주체가 조달청으로 확정되면서 급류를 타고 있다. 정부는 상반기중에 개정 대상 법령을 확정하고 개정 추진에 나설 예정이다. 또한 목록·단가계약상품정보·업체정보·실적정보 등에 대한 초기 DB구축을 위한 수요기관과의 협의를 완료하고 8월까지는 G2B활성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완료해 9월부터는 인터넷 조달 단일창구를 통한 전자조달서비스를 가능케 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조달청은 10월까지는 전자화 수준이 높은 국가행정기관·광역자치단체·공기업 중 대표적인 기관에 대해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11월부터는 모든 공공부문으로 확대키로 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연말까지는 2만7000여 공공기관 및 3만5000여 조달업체와의 정부조달 업무가 온라인화된다. 또 그동안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기업 등의 조달정보를 단일창구에서 접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국가재정정보시스템·G4C 전자결재시스템 등 타 관련 시스템과 연계된 서비스는 오는 10월부터 해당 서비스 개통시기에 맞춰 제공된다. 공공분야의 전자조달 적용으로 당장 예상할 수 있는 효과는 비용절감이다. 올해 9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상용화할 경우 연간 1조2700억여원, 내년부터 전면 확산되면 연간 약 3조2000억원의 예산절감이 기대된다는 게 G2B활성화추진단의 분석이다. 국가·산업 측면에서 엄청난 경제유발 효과가 기대되고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효익은 더욱 크다. 정부 차원에서는 조달업무가 효율화·투명화되는 것은 물론 점차 거세지는 시장경쟁논리가 본격 도입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한 이번 사업을 통해 산업부문과 호환가능한 공통 물품관리체계가 도입돼 민간 B2B사업과의 연계효과는 물론 조달업체의 판로확대도 기대된다. 이밖에 조달업체 관련정보가 축적·통합 관리됨으로써 정부 조달관행에 공정성이 크게 향상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 및 공공기관의 전자조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경제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자조달시스템을 도입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기업체들이 전자조달시스템 구축을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나면 우선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술적 구조, 내부 및 외부 소프트웨어의 통합, 관리툴, 제품 정보관리, 처리절차, 대금지불, 최적화 툴, 생존력, 기능적 사양, 비용 등의 평가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전자조달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 만큼 인증, 접속제어, 감시 및 안전한 데이터 통신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지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시스템 차원의 보안기능을 채용할 것인지 아니면 응용 프로그램 차원의 보안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도 검토해야 한다. 생산현장 직원들이 직접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전자조달시스템을 활용하려는 기업은 기존의 ERP 등을 통합 조정하면서 발주·청구서 처리와 관련된 중복 및 통제 관리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 전자조달 대상국가를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자조달시스템을 각국 화폐의 변환, 다국어 번역, 각국 법규의 수용 등 글로벌 지원의 가능 여부도 빼놓을 수 없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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