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강국 코리아, IT강국 코리아가 길을 잃고 헤매는 데는, 플레이어들의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기도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 여러 부처들이 IT정책에 관심을 표명하지만 그렇다고 명확한 소관부처는 없다. 그냥 덤 정도로 생각하는 눈치다. 플레이어들로서는 괜히 이 부처 저 부처 기웃거리다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여러 부처들이 펴는 정책도 다른 산업정책과 달리 IT분야는 기업들의 역할을 요구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통신 분야는 급변하는 기술개발 환경은 무시된 채, 요금 인하를 압박하는 목소리로만 가득하다. 3년 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IT 산업계는 방송산업을 형제로 받아들였다.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이름의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방송은 IT정책 결정 속도를 더디게 할 뿐 산업으로서 거듭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방송이 무슨 산업이냐며, 형제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형국이다. ‘타 산업과의 시너지’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IT융합산업 정책 또한 IT 업계로서는 힘겹기는 매 한가지다. 통신사업자들이 미래 원천기술 개발을 통한 성장엔진 마련을 목적으로 내놓고 있는 정보통신진흥기금은 IT산업계뿐 아니라 모든 산업계가 골고루 나눠 쓴다. 돈은 IT 업계가 내는데, 이를 받아 쓰는 타 산업계는 실제 사업에서는 항상 ‘갑’ 노릇을 한다. IT 업계는 타 산업과의 융합이 강조되면서, 차세대를 견인할 새로운 기술 개발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강조하는 전통산업과 IT 접목을 통한 부가가치 향상은 기본적으로 진행해야 할 사업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렇다고 미래 IT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답보상태라면, 세계 선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던 대한민국 IT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제외한 IT선진국들은 음으로 양으로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예산을 브로드밴드 구축에 투입하고, 통신용 주파수 확보도 기업보다 먼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갹출한 자금조차 통신산업 발전에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 IT업계는, 쪼그라든 시장 환경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놓고 신음하고 있다. IT인들의 불만은 ‘책임만 있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산업진흥정책 수립에 있어 IT는 보조수단쯤으로 치부되기 시작했고, 특히 통신 업계는 물가당국으로부터 민생고를 가중시키는 폭리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스마트폰 열풍에 열광하지만, 스마트 열풍을 지탱해주는 인프라 구축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서비스요금을 낮추고 서비스 질을 높이는 노력은 사업자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상황에 맞게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 줘야 한다. 실제로 통신서비스의 양적, 질적 향상으로 인해, 통신사업자들의 네트워크 투자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국내 통신업계는 사업 초기만 해도 아날로그나 디지털 망 등 한두 개의 망만으로도 운영이 됐으나, 현재는 2G, 3G, 와이브로, 와이파이, 펨토셀 망은 물론이고 조만간 LTE까지 구축해 서비스한다. 구축비는 물론이고 운영비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메릴린치가 지난 2009년 발표한 ‘글로벌 와이어리스 매트릭스(Global Wireless Matrix)’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52개국의 이동통신서비스 EBITDA이윤(영업이익+감가상각비)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44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국내 물가당국의 이동통신 요금인하 압박은 매년 한두 차례 정도 꾸준히 진행됐다. IT산업의 에코시스템 활성화를 위한 투자 압박과 요금 인하 압박이 동시에 가해지면서, 업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네트워크 구축 사업자 따로, 네트워크에 무임승차해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 따로이다 보니 내부 갈등도 심각하다.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탈출구를 마련한 IT산업계가 성장동력 미비로 신음하고 있다. IT 주도권을 ‘스마트’ 돌풍 속에서 상실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대한민국 IT호는 압박만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투자와 고용 창출을 주문하고자 한다면, 그 기간에는 요금인하 요구에 신중해야 한다. 모든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면, 다 잃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준비와 변화를 위해서는 국내 IT산업의 체질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글로벌 스마트시대에 맞는 생태계 조성과 인프라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안개 낀 터널 속을 달리고 있는 한국 IT호가 인프라 강국, 서비스강국, 토털 IT 강국을 견인해 나갈 수 있는 힘은 B4G를 선도하는 플레이어들로부터 나온다. 우선 이들의 기부터 살려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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