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은 삼성전자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달이었다. 애플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아이폰 쇼크’라는 말처럼 아이폰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카운터펀치를 맞은 삼성은 잠시 정신을 잃었지만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지난해 6월 ‘갤럭시S’를 내놓고 아이폰 추격에 나서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폰 여진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최근 KT의 아이폰 판매량이 200만대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국내에 팔린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650만~700만대임을 고려할 때 3분의 1을 애플이 독식한 셈이다. 통신사업자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국내 시장에 일면식도 없던 애플의 처지를 감안할 때 눈부신 성과다. 물론 6개월 만에 판세를 뒤엎은 삼성의 저력도 놀랍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성공 방정식은 이렇듯 1등 따라잡기 이른바 ‘캐치 업’ 전략이었다. 삼성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성공 배경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모델이었다고 인정한다. 글로벌 전자시장에 후발업체인 삼성으로서는 최적의 전략이었다. 여기에 뛰어난 마케팅과 제조 생산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삼성 휴대폰을 세계 시장에 알린 ‘애니콜’은 자동차가 밟아 파손됐어도 통화가 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내구성과 완성도가 뛰어났다. 지금 삼성은 매출·사업 규모 면에서 글로벌 수위를 달리고 있다. 2등과 3등은 큰 차이가 없지만 1등은 2등 이하 업체와 ‘180도’ 다르다. 스스로 시장을 만들고 개척해야 한다. 더 이상 따라잡을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결국 제품력을 뜻한다. 시장 수요를 제대로 읽어 남이 하지 못하는 획기적이며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아야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수차례 위기를 강조하면서 ‘10년 뒤에 지금의 삼성 주력 제품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장 엔진은 삼성 입장에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시장이 급변하고 기술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는 10년이 아니라 앞으로 5년 뒤에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삼성의 과거 강점이었던 과감한 투자, 빠른 의사 결정, 제조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삼성도 이를 간파해 이미 2006년부터 ‘창조 경영’을 모토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삼성이 과연 창조적인 기업이냐고 반문한다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조직 문화 측면에서 가장 혁신적이라는 구글 등 다른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전략과 방향은 서 있지만 아직 조직력과 문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인사에 맞춰 조직을 새로 정비한다. 새로운 조직도가 나오며 여기에는 임원 이상 간부급 직원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대부분 회장부터 말단 임원까지 톱-다운 방식으로 짜여 있다. 사업부 변동과 신설 조직에 따라 일부 변화가 있지만 매년 엇비슷하다. 톱-다운 방식은 전형적인 제조업에 맞는 방식이다. 창조 경영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하드웨어 기업 구조와 문화에 조직이 맞춰 있는 셈이다. 제조업은 시장이 열린 후 움직이는 게 속성이다. 시장을 열어 가는 창조 기업은 다르다. 한 발짝 먼저 시장을 읽어야 한다. 100년 삼성전자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 엔진을 찾고 새로운 먹거리 발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미래를 내다보고 10만명에 달하는 삼성 인력을 창의적인 인재로 활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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