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헤리츠타워에서는 보기 드문 쇼케이스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V3i는 3D 동영상 라이브 서비스를 공개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자체 제작한 3D 그라비아·스타 동영상 등을 생중계로 보여준다. 일반 PC와 스마트폰으로도 3D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게 이색적이었다. 특히 V3i 대표 인사말이 눈길을 끌었다. 신재각 대표는 “아바타로 인한 3D 열풍이 일찍 식어버린 것은 바로 콘텐츠 부족 때문”이라며 “다양한 장르의 3D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3D 열풍을 불러일으킨 ‘아바타’가 개봉한 지 얼추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3D는 세상을 바꿔 놓았다. 아바타가 개봉될 당시 세상은 이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할 정도로 3D 신드롬을 일으켰다. 정부도 3D 산업 활성화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고 산업계도 시장을 키우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당장 눈앞에 펼쳐질 것 같은 ‘3D 엘도라도’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왔다. 1년이 지난 지금, 냉정히 3D 분야 성과와 과제를 짚어 볼 시점이다. 먼저 지난 1년 동안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제반 조건이 갖춰졌다. 산업계가 앞서 시장을 열었고 정부가 힘을 보탠 결과다. 산업이 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당장 문화부는 2015년까지 국내에서 상영되는 영상 콘텐츠 가운데 3D 비중을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3D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인력과 기술·투자 등 기초 인프라가 취약한 실정”이라며 “내년부터 시작해 2015년까지 3D 콘텐츠 개발 분야에 4000억원 이상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도 2013년 3DTV 방송, 2015년 무안경 3DTV 시대로 이어지는 ‘3D 산업 로드맵’을 확정했다.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개발과 목표가 정해진 것이다. 기술표준원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기표원은 삼성·LG전자 등 주요 기업, 전자부품연구원 등 연구기관이 중심이 된 ‘3D 국제 표준전략팀’을 만들고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3D 표준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표원 김치동 국장은 “3D는 차세대 성장 동력 분야”라며 “영상 압축(MPEG), 디스플레이 등을 활용, 관련 기술을 조기에 국제 표준화해 글로벌 3D 시장을 선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성과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화질 3DTV 실험 방송에 성공했다. 올해 5월 월드컵 당시 지상파로 표준 화질 3D 방송을 세계 최초로 실시한 데 이은 후속 성과다. 3D 방송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다. 광운대 유지상 교수는 “실험 방송은 기존 3D 방송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실험 방송을 계기로 우리 3D 방송 기술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3D 방송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었다. 먼저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주변 환경은 무르익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눈에 확 들어올 만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3D가 거의 모든 부문의 키워드로 떠올랐지만 소비자 인식을 바꾸었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당장 3DTV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디스플레이서치는 최근 올해 전 세계 3DTV 수요가 320만대로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3개월 전 예측치(340만대)보다 다소 줄어든 것이다. 세계 최대 3DTV 소비처인 북미 지역 판매량이 종전 200만대 이상에서 160만대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서치는 3D 콘텐츠 부족과 북미 지역에서 전반적인 수요 부족을 주된 배경으로 꼽았다. 물론 내년 1740만대를 시작으로 2014년에 9150만대까지 판매량이 늘어나 총 TV 판매량의 31%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잊지 않았다. 3D 산업이 크기 위해서는 킬러 콘텐츠가 당장 ‘발등의 불’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3D 산업 활성화와 콘텐츠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재삼 확인한 것이다. ‘3D 붐’이 일었던 초기 소비자를 확 끌어 잡았던 것도 사실 아바타라는 블록버스터급 킬러 콘텐츠였다. 최용석 빅아이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콘텐츠와 디스플레이가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 때 3D 시장 활성화 시점도 앞당길 수 있다” 며 “당장 소비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3D 콘텐츠가 많아져야 건전한 산업 발전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콘텐츠 수요와 공급의 보조를 맞춰 선택의 폭을 넓혀 주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제 아무리 디스플레이가 훌륭해도 볼 만한 콘텐츠가 없다면 소비자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이다. 물론 콘텐츠는 노하우, 즉 시간과 싸움이다. 국내 짧은 콘텐츠 제작 역사에 비춰 볼 때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불균형 문제를 해당 업체에 맡기지 말고 정부와 모든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3D 제작과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인력·시설 등 인프라 투자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3D 영상 촬영뿐 아니라 기존 2D 영상을 3D 영상으로 변환하는 기술도 빨리 확보해야 한다. 또 3D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3D 안경 개선, 궁극적으로는 무안경 3D 기술 개발에도 나설 시점이다. 3D 저변 확대를 위해선 TV뿐 아니라 PC, 대형 광고 디스플레이 등 3D 디스플레이 제품을 다양화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이 밖에 3D와 관련된 표준 제정, 방송 3D 전용장비 도입, 관련 인력 교육 등 건강한 3D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를 하나씩 짚어 나가면서 관련 산업계와 정부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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