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멜라민 함유 분유 파동으로 먹거리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식품 안전사고였지만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당시 비상대책을 고민하던 롯데그룹은 자체 조사 결과 일본 유통업체들이 전문 포털 사이트를 마련하고 제품에 대한 이력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외에서는 식품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는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롯데그룹은 식품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 그룹의 주요 관계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통합 상품이력관리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박정우 롯데그룹 정책본부 CFD(Cross Functional Division) 이사는 “롯데그룹에는 유통 관계사뿐 아니라 식품 제조사가 있는 만큼 유통과 제조를 이으면 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면서 “이를 위해 4개 유통사와 4개 제조사가 함께 소매를 걷어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롯데그룹 CFD 주관으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롯데제과, 롯데삼강, 롯데칠성음료, 롯데햄 등 8개사가 총 40억원 이상을 투자해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통합 상품이력관리’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롯데그룹은 우선 지난해 3월 오픈타이드코리아과 함께 소비자 인지도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이 고조에 달했음은 물론, 안전이 확보된 경우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 추진의 당위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특히 안전사고 발생시 해당 식품을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대안마련도 시급했다. 곧이어 6월부터 본격 시스템 구축에 착수한 롯데그룹은 그룹 제조관계사에서 생산 및 관리팀장, 유통관계사에서 상품총괄팀장 등 현업 인력을 비롯해 IT 인력도 추출해 ‘상품이력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주요 시스템은 크게 △생산이력관리 △상품이력관리 △PB이력관리 △고객안전포털 △상품안전센터 시스템 등으로 구성해 모든 모듈을 직접 설계하고 자체 개발했다. 박형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CFD 과장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 밑그림 마련을 위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담당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설명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은 제조업체들이 해당 제품의 원부자재 정보를 정확하게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협력업체들이 재료 납품시 △구성비 △생산지 △생산일자 △품질검사 여부 등을 직접 입력하도록 했다. 또 이 정보를 증빙할 수 있는 증빙자료도 함께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이 밀가루 제품은 각각 몇 %의 국내산 및 국외산 원료를 함유하고 있으며 몇월 몇일에 생산해 OO 품질검사를 마친 제품’이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협력업체가 입력하도록 했다. 이 정보를 받은 제조업체가 해당 제품을 제조해 출하하면, 이 제품이 어떤 원료로 구성됐는지 등을 비롯해 생산 로트(LOT) 단위로 출하 날짜 정보 등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서 생산이력시스템으로 보내진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롯데제과, 롯데삼강, 롯데칠성음료 등 제조사들의 ERP 구축 작업이 내년경 완료되면 데이터 전송은 더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어 이 정보는 유통업체의 상품이력관리시스템으로 보내진다. 박형규 과장은 “이 시스템으로는 상품의 기본 정보와 함께 제조사로부터 흘러온 품질 및 이력정보는 물론 알레르기 반응 물질 포함 정보와 영양분 특이사항 정보까지 관리되며 이는 모두 소비자에게 공개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이런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해 상품 정보를 표준화했다. 모든 유통계열사가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상품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 것이다. 향후 비식품군을 대상으로 DB 구축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현재 롯데그룹 유통 관계사들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PB상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PB상품이력관리’ 시스템도 구축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기업에서 제작하는 데 따른 소비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PB상품의 경우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안정된 이력관리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DB 등 모든 시스템 구성은 이중화하고 서버 19대를 배정했으며, 향후 그룹관계사로 확산하는 것이 용이하도록 확장성도 고려해 구축했다. 시스템 관리를 위해 각 제조사별 태스크포스팀(TF)이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을 관리하도록 하고, 또 그룹에서는 총괄책임자를 비롯해 IT인력 등 총 7명의 전담인력을 배치해 운영하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품안전센터시스템은 이 정보들의 환경규제 준수 여부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연계된 모든 이력관리 정보들은 고객안전포털인 ‘올세이프’에 공개돼 소비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상품이력관리시스템의 정보가 포털로 자동 전송되며, 이 포털에서 상품 정보의 검색, 조회 등이 가능하다. 이 포털은 지난 3월 정식 오픈했다. 롯데그룹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관계사를 내년 말까지 롯데리아, 롯데브랑제리 등 롯데그룹의 다른 식품 관계사와 롯데호텔 등 서비스 부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롯데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인터뷰]박정우 롯데그룹 정책본부 CFD 이사
--현재 이 시스템에 등록된 제품 비율은 얼마나 되나. 지난 4월까지 시스템 안정화를 거쳐 현재 식품 4사의 생산이력 가능 제품이 전체의 90% 수준에 도달했다. 또 유통 4사의 품질정보 등록률도 78%에 달한다. 지금까지 규격식품 위주로 적용했는데 올 하반기부터 비규격 신선 및 즉석식품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제품의 원료 및 부자재 정보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원부자재 업체들이 납품 제품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 정보가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러한 정보 공개로 인해 원료 납품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소비자 신뢰도가 높아져야 모두 상생할 수 있다’며 설득해 결국은 협력사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위기 대응 체제를 더 강화했다고 하는데. 과거에는 제품의 문제를 알아도 회수 조치에 어려움을 겪거나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모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 구축후 유통사와 제조사가 연계돼 모든 이력이 관리되는 만큼 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즉시 관련 정보가 일제히 공유된다. 제조 과정이나 유통 단계의 어느 부분에 있더라도 자동으로 해당 제품의 생산과 유통이 차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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