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천년 전부터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어왔다. 생체기능에 꼭 필요한 천일염은 매우 귀한 자원으로 한때 금값을 넘어서는 가치를 갖기도 했다. 몇 년 뒤면 소금 외에 희귀광물을 해수에서 채취하는 기술도 실용화될 전망이다. 지표면의 70%를 둘러싼 바다 전체가 무한한 채굴가치를 지닌 광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닷물이 증발되면 약 3.5%의 하얀 결정체, 소금 덩어리가 남는다. 염전에서 만들어진 천일염을 분석해보면 흔히 소금이라 불리는 순수한 염화나트륨(NaCl) 외에도 우라늄, 철, 타이타늄, 바나듐 등 수십종의 광물질이 섞여 있다. 지난 1980년대부터 미국, 일본에서는 육지의 광물자원이 바닥날 때를 대비해 바닷물에서 희귀광물을 채취하는 기술을 연구해왔다. 전 세계 바다에 녹아 있는 광물질의 0.0001%만 걸러내도 산업발전에 꼭 필요한 광물 수요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77종의 광물질 모두가 상업적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바닷물에서 금속자원을 뽑아내는 ‘해수광산(海水鑛山)’이 실용화되려면 산업계 광물 수요가 충분하고 저렴한 채취기술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지난 1982년 미국 MIT에서 해수 속에 섞인 금속자원의 경제성을 분석하는 도표를 발표했다. 도표에서 해수 속 용존량이 많고 거래가격이 높은 우상단에 속한 광물자원은 해수광산으로 개발가치가 그만큼 크다. 원전발전에 필수인 우라늄(U)은 매우 비싸고 전략적 가치가 높은 광물이라서 유력한 해수금속자원으로 주목받지만 아직까지 충분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해수 1톤 중 우라늄 함유량이 0.003g에 불과한 것이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리튬(Li)이 해수광산 시대를 열어줄 선두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중이다. 리튬은 휴대폰, 노트북과 같은 모바일 정보통신기기와 친환경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배터리의 핵심원료로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리튬은 정보통신 산업의 소금에 비유될 정도로 중요한 국가전략광물이다. 현재 육지광산에서 상업적으로 채굴가능한 리튬은 410만톤에 불과해 향후 10년 내 고갈이 확실시된다. 그마저 칠레(300만톤)와 중국(54만톤) 등 일부 국가에 편중돼 세계 각국은 치열한 리튬 확보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해수광산자원으로 리튬의 장점은 바닷물 1톤당 함유량이 ‘0.17g’에 달하는 것이다. 미미한 분량처럼 보이지만 전 세계 바다에 녹아 있는 리튬의 양으로 환산하면 2300억톤에 이른다. 인류가 모든 동력을 리튬배터리로 바꿔 수만년을 쓰고도 남을 분량이다. 염전에서 아무리 소금을 많이 만들어도 환경에 문제가 없듯 우리는 사실상 무한한 리튬자원을 바다에서 캐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리튬 수입량은 휴대폰 및 각종 IT기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 2008년 6억달러, 1만1000톤을 넘어섰다. 2차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리튬 가격이 폭등하면 우리나라 IT산업에 심각한 타격이 온다. 리튬을 바다에서 경제적으로 무한정 뽑아낼 수 있다면 꿈의 기술이 실현된다. 우리나라는 해수광산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다행히 리튬채취 기술에서 일본보다 한발 앞선 상황이다. 정강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팀은 지난 10년간의 연구 끝에 해수에 미량 녹아있는 리튬만을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고성능 흡착제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바닷물에서 리튬을 추출할 때 천일염을 만드는 증발방식을 활용하면 수십종의 원소와 뒤섞여 대량생산이 어렵다. 바닷물 속에서 리튬만 뽑아내려면 특수한 재질의 흡착제에 리튬결정이 저절로 엉겨붙게 해야 한다. 문제는 리튬 흡착제는 매우 미세한 분말상태라서 물에 쉽게 녹는데 이를 방지하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이웃 일본은 지난 1980년대부터 해양리튬 추출기술에 막대한 R&D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분말 형태의 리튬흡착제를 PVC 소재의 과립형태로 감싸서 성형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문제는 PVC와 섞인 흡착제 분말의 흡착성능이 떨어지고 일정기간 사용 후 폐기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플라스틱 소재의 흡착제 폐기물은 바다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강 박사팀은 우리보다 20년이나 앞선 일본 연구진의 선행연구에서 단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수없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돌파구를 찾았다. 녹차티백에서 힌트를 얻어 바닷물은 통과하지만 분말은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물막에 흡착제를 넣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열흘 정도 흐르는 바닷물에 담가둔 흡착제 주머니를 끄집어내서 화학처리를 하면 하얀색의 탄소리튬이 나온다. ‘분리막 레저버 시스템’이라고 명명된 고성능 흡착제는 분말 1g당 45㎎의 리튬을 뽑아낼 수 있다. 일본 기술진이 개발한 흡착제보다 효율이 30% 높다. 걸러진 흡착제는 다시 주머니에 넣어서 바닷물에 넣으면 성능 저하 없이 무제한 반복사용이 가능하다. 정 박사팀이 연구 10년 만에 거둔 리튬이온 추출기술은 친환경성과 효율 면에서 세계 최고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울진, 월성 등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되는 따뜻한 바닷물을 재활용하면 세계 최고 수준인 리튬 흡착효율을 더 높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원천기술을 회피해서 독자적인 리튬해수광산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이제는 실험실의 성공에 이어 리튬공장을 짓는 상용화에 도전한다. 때맞춰 국제시장에서 리튬가격이 올라가면서 관련기술의 상용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국토해양부와 포스코는 올해부터 5년간 300억원을 투자해 리튬을 생산하는 플랜트 공장을 짓기로 했다. 올해 시험플랜트를 제작하고 2014년까지 연 10톤의 리튬생산 상용화 실증플랜트와 일괄공정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 이후에는 연간 2만∼10만톤에 이르는 리튬공장을 가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국내 리튬수요를 충족하면 연간 수억달러의 수입대체 효과가 발생하고 세계시장에 본격적인 수출도 가능해진다. 이 같은 계획은 세계 각국의 전기차 보급으로 리튬가격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다는 전망 하에 나온 것이다. 현재로선 육지에서 리튬 광석을 캐는 것보다 바다에서 뽑는 비용이 몇 배 더 높다. 현재 확보한 원천기술을 활용해 공정자동화와 최적화된 리튬이온 프로세스까지 만들어야 세계 최초의 해수리튬 추출공장이 우리나라에서 가동될 것이다. ◇해수광산의 미래=21세기는 석유 외에도 광물자원의 무기화가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주요 산업소재인 리튬추출 분야에서 돌파구를 열었지만 여타 해수광물 개발에도 앞서가는 공격적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자원빈국으로서 공짜로 쓸 수 있는 바닷물에서 원하는 물질을 추출하는 해수광산 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은 해수에서 추출하는 생산가격이 훨씬 비쌀지라도 자주개발에 따른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면 다양한 해수광물의 추출기술을 확보해둬야 한다. 이웃 일본은 해수 중의 우라늄 채취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해수에는 광산 우라늄의 1000배에 달하는 45억톤의 우라늄이 존재한다. 원전개발 붐에 따라 세계 각국의 우라늄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해수광산의 우라늄 추출은 2020년대 충분한 경제성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20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세계 각국에 원전수출에 나서는 우리로서는 리튬 외에도 우라늄 추출기술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 박사팀도 우라늄 추출연구를 시도했지만 남들이 성공하지 못한 분야에 도전할만한 연구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정강섭 박사는 “해양용존자원 추출작업은 막대한 투자비와 오랜기간의 연구작업이 필요하지만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선 매우 가치있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한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2010년대 말이 되면 대한민국은 칠레, 중국과 함께 세계적인 리튬 수출국으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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