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개 주요 증권사가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구축을 위한 컨설팅과 시스템 개발 작업을 공동으로 추진했다. 전체 프로젝트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앞서 4개 증권사가 같은 이유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는 데다 증권업계 최초의 공동 IT프로젝트라는 점 때문에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비슷한 시점에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이 공동으로 AML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동종업계라 해도 각 사 시스템 환경과 개발 요구, 선호하는 솔루션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 프로젝트가 사실상 마무리에 접어든 지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7개 증권사는 과연 만족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비용절감 목표는 달성’, ‘품질 수준은 일부 불만’이다. AML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개별적으로 구축하는 것보다 비용이 20% 이상 절감됐고 구축 기간도 단축됐지만 개별 요건의 구현 정도나 품질 수준을 놓고 보면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시행착오 최소화 위해 공동 추진=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5월 공통 룰(규칙) 개발을 위한 컨설팅 작업부터 시작됐다. AML 관련 시스템은 크게 2개로 나눌 수 있는데, 창구에서 고객 확인하는 작업(고객알기제도, KYC)과 이후 모니터링하고 분석, 보고하는 단계(혐의거래모니터링, TMS)로 구분된다. 각 단계마다 국내 업무지침 및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 권고사항을 기준으로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 이번 공동 프로젝트는 AML 영역 중에서도 TMS 시스템 구축에 해당된다. KYC의 경우 2008년 12월까지 금융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구축 완료해야 했고, 기존 기간계 시스템에 고객 확인 프로세스를 추가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TMS는 기간계 시스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추출해 별도의 분석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증권사들의 공동 접근이 가능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TMS의 경우 국내 증권업계로는 처음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며 “앞서 KYC 대응 시스템을 개별적으로 구축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이번 TMS 시스템 공동 구축은 증권사들간 정보 공유와 시행착오 최소화,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추진한 것”이고 말했다. 공통 룰 개발을 위한 컨설팅은 7개사가 동시에 시작했지만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개별 컨설팅과 구축 작업들은 각 사의 내부 일정에 맞춰 1차와 2차 그룹으로 나눠 진행했다. 1차에 참여했던 증권사는 대신증권, 동양종합금융증권, 한화증권, 메리츠증권 등 4개사다. 이들은 10월에 시스템을 오픈했고 이후 신한금융투자, 유진투자증권, SK증권 등 3개사가 바통을 이어 받아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공동 프로젝트의 컨설팅과 솔루션 공급은 국산 솔루션업체인 데이터메이션이 맡았다. ◇개별 구축보다 20% 이상 비용 절감=프로젝트에 참여한 7개 증권사 중 5개사는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개별 구축을 했다면 컨설팅과 솔루션, 개발 작업 등을 최소 2억5000만원, 많게는 6억원까지 투입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동 프로젝트를 참여한 증권사들은 2억원씩 투자했다. 또다른 증권사의 관계자는 “최소 20%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공동 프로젝트의 최우선 목적이 비용절감이었던 만큼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구축 기간 역시 개별 추진 프로젝트에 비해 단축됐다.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기간이 다소 늘어났다. 프로젝트 초기 예상됐던 구축 기간은 약 3개월이었지만 실제로는 5개월 가량이 소요됐다. 7개사 모두 지난해 12월 프로젝트를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1월말로 완료일이 늦춰졌다. 2차 그룹의 증권사들은 1차 그룹의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전체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 주 사업자인 데이터메이션의 황석해 사장은 “1차 그룹의 지연으로 2차 그룹의 프로젝트도 순차적으로 지연됐지만 1그룹에 비하면 2그룹의 구축 기간은 30% 이상 단축됐다”고 말했다. 개별 구축한 한국투자증권이나 대우증권, 현대증권 등은 컨설팅 기간을 제외하고도 최소 4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2차 그룹에 속하는 SK증권은 차세대 프로젝트와 맞물리면서 가장 늦게 구축작업을 시작했다. 시스템 가동은 3월 이후로 예상하고 있다. ◇품질 만족도는 ‘글쎄’=시간과 비용 절감에 대해서는 만족하지만 시스템 품질 측면에서는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초기 기대치에는 근접하지만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동 프로젝트에서 추가 개발 요구는 그룹웨어와 연계하거나 의심거래 확인요청 등 일부 기능에 그쳤다. 신규 요건 사항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스템 수준이 초기 예상과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제한된 개발 인력으로 각 증권사 환경에 맞춰 추가 개발을 하는 부분은 쉽지 않았다. 이번 공동 프로젝트에는 각 증권사별로 15∼18M/M의 개발 인력이 투입됐다. 개별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증권사들의 경우 평균 30M/M가 투입됐다. 대신증권의 경우 커스터마이징 작업이 70%에 이를 정도여서 한정된 개발 인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참여 증권사의 한 담당자는 “AML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7개사의 아이디어를 모아 룰을 개발하려 했지만 각 증권사마다 고객을 보는 관점이 달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면서 “각 증권사의 요건에 맞게 다시 룰 정보를 개발해야 하는 등 공동 프로젝트의 취지가 다소 무색해진 측면도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표준화된 공통 영역과 개별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데 있었다. 이 외에도 참여 증권사들은 개발 인력 부족, 타 증권사와의 논의에서 의사결정 시간 지체 등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투이컨설팅 이호재 상무는 “현실적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도 각 사별로 개발 내용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컨설팅 차원에서만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라며 “공동으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에는 비용과 구축 기간 외에 향후 커스터마이징의 확장 여부와 유지보수 관리 문제 등도 주의깊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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