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11월 자발적으로 설정한 ‘2020년 예상배출량(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국가 중기 감축목표를 발표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15)에서 이를 공식 천명했다. 이에 따라 전 부문에 걸친 온실가스 감축규제 정책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기 온실가스감축 목표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말대로 정말 국내 제조업 등 산업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가장 큰 부담을 안게 될 산업계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일방적인 목표’라는 등의 의견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액션플랜과 분야별 감축량 할당을 쉽사리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온실가스감축이 말처럼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또한 자칫 ‘자발적’ 목표라는 이유로 2020년까지 이를 달성하지 못해도, ‘미안합니다’ 라는 말만으로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도가 속절없이 떨어질 것은 물론, 선진국들의 온실가스배출량 기준으로 한 보호무역·규제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하고 국제무대에서 설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다시 후진국 신세로 전락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부터(Me first)’=선제적 대응도 좋지만, 너무 빨랐다=지난해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 15는 선진국-개도국간 책임공방으로 실질적 이행을 위한 감축목표 설정을 하지 못하고 끝났다. 전 세계적으로 팽배해 있는 ‘온실가스감축 필요성에는 동감하지만 자국의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면 안된다’는 보호주의적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국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로 인해 협약의 법적 구속력 확보는 물건너 갔고 향후 구체적 이행방안 마련을 위한 협상시한 또한 설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온실가스감축 의무를 지는 일에 한 발 물러서는 국제정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체적인 액션플랜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도국에 권고하는 최고 수준인 ‘BAU대비 30% 감축’이라는 목표를 덜컥 발표했다. 자발적 목표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안심할 수도 있겠지만, 국제무대에서 천명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비난이 쏟아질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격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비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현재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게이단렌 주관으로 ‘자주행동계획’을 수립해 온실가스를 감축했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초과 발생된 온실가스를 상쇄하기 위해 해외에서 배출권(CER)을 구입해야 한다. 새해 예산에도 429억엔(약 5300억원)을 반영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오는 2021년 예산에 이를 상쇄하기 위한 CER 구입비용으로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이 들어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자발적이라지만 의무적인 목표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결국 국민에게 탄소세나 기후변화세 등의 명목으로 돌아갈 온실가스감축 부담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빨리 다가왔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감축에 동참하겠다고 나선 지난해 1인당 GNP는 2만달러에도 못미친 것으로 추정된다(2008년 1만9106달러, 2009년 마이너스 경제성장). 이에 반해 온실가스감축 의무를 명시한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된 2005년 당시 영국·캐나다·일본 등 주요 5개국의 국민총생산 평균은 3만5500달러 수준이다. 영국 3만7790달러, 프랑스 3만5187달러, 캐나다 3만4956달러, 일본 3만4718달러, 독일 3만3856달러 순이다. 특히 전세계가 처음 온실가스감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1995년 당시에 이 5개국의 국민총생산 평균도 2만4878달러였다. 이 같은 통계는 선진국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수준보다 월등히 높은 상태에서 십여년 동안 온실가스감축을 위한 준비를 갖춘 후 행동에 착수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들이 준비하기 시작했던 당시의 소득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준비할 틈도 없이 감축행동에 나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중기 온실가스감축목표 설정=산업계 ‘정부에 당했다’=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액은 2005년 1415억달러로 총수입액의 32.5%를 차지한다. 온실가스 절대 배출량 기준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위이며, 연평균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2005년 기준). 연평균 에너지 사용 증가율은 3%로 세계 9위다. 전체 에너지원 가운데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의존율은 80%를 육박한다. 이처럼 낮은 에너지 자급률에도 화석에너지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데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우리 산업구조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같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에너지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전체 산업에서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은 2006년을 기준으로 한국이 8%, 일본은 4.6%, 미국은 3.1%이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한국이 9.3%인 데 비해 독일 5.8%, 일본 5.4%, 미국 3.9%이다. 이 같은 특성상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위기로 다가온다. 따라서 이미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천명한 중기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이제 와서 바꿀 순 없겠지만 큰 부담을 지게 될 산업계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중기 감축목표 설정이후 “이 정도 수준(중기 감축목표)까지 감당하기 어려운데, 정부의 술책에 당했다”며 “‘목표가 정해졌으니 힘들어도 따라오라’는 것은 공장 문을 닫으라는 말과 같다”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수의 에너지다소비산업계 관계자들은 “중기 목표 발표 이전에 이를 주관한 녹색성장위원회와 산업 분야별 관계자들과 미팅이 여러 번 있었다”며 “컴컴한 밀실에서 녹색위 관계자가 산업분야별 온실가스감축 할당량을 보여주며 ‘산업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수준’임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들은 “그러면서 녹색위에서는 ‘미팅에서 알게 된 산업분야별 온실가스감축 할당량은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함구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산업계의 적은 할당량 정보가 미리 노출되면 이에 대한 환경단체 등의 여론을 반영해 실제 할당량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발표된 중기 목표는 정부가 제시한 3가지 안중에 가장 높은 ‘2020년 BAU대비 30% 감축’이었다. 산업계에는 따로 불러 부담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협조를 요구하고선, 실제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2020년 BAU대비 30% 감축, 달성 가능한가=도전적인 정부의 의지와 달리 온실가스감축 중기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현재의 산업구조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일 만큼 어려운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 자체가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신기술 및 대체에너지 또한 적은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체를 줄이거나 에너지효율향상 또는 새로운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생산자 비용을 높이고 최종소비자가격을 상승시켜 수출이 둔화되고 소비가 위축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른 생산 감소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기술과 대체에너지 개발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편익이 온실가스 저감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신기술이나 대체에너지가 개발되고 시장에 보급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조유현 중소기업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중기 목표에 대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너무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감축설비에 투자를 해야 하고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판매단가는 그대로인데 비용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것. 조 본부장은 “대기업에서 온실가스감축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납품하는 곳은 문제가 더 크다”며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해야 하는 상황은 알지만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조 본부장은 “투자세액공제를 늘리고 온실가스 감축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연한 중소기업들을 위해 온실가스감축 행동방안에 대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학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온실가스 감축에는 많은 비용이 수반되고 아직은 우리 경제가 중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산업구조는 제조업이 중심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기 목표를 넘어서 최종 목표를 결정하기 전까지 산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국익에 최우선되는 수준에서 국가적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산업구조는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산업계가 국제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할 때 내부적인 갈등해소와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에 대한 지원과 보완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중기 목표는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는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이다. BAU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온실가스 전망치이다. 중기 감축목표는 2005년 배출량 대비 4%(5억6900만톤)를 감축하는 양이며,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GDP 0.49%p의 감소가 예상된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2008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0개월에 걸쳐 8개의 전문연구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체계적인 감축잠재량 분석을 실시하고 지난해 8월 3가지 감축시나리오를 제시, 의견 수렴을 거쳐 11월 국무회의에서 최종 목표를 확정했다. 이 중기 목표는 IPCC가 개발도상국에 권고한 감축범위(BAU 대비 15∼30% 감축)의 최고수준으로 국내적으로 녹색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범지구적인 기후변화 대응노력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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