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증권이 차세대 시스템 개통일을 두 차례 연기했고, 향후 개통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증권업계에서 차세대 시스템 개통 일정을 연기한 사례는 비단 SK증권만이 아니다. 앞서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한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등 대부분의 증권사가 적게는 한 차례, 많게는 세 차례 이상 시스템 개통 일정을 연기했다. 물론 한국거래소(KRX)의 차세대 시스템 개통일에 맞춰 동시에 시스템 오픈을 계획했던 대신증권과 현대증권의 경우 KRX의 일정 연기로 어쩔 수 없이 개통일을 미룬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증권업계의 차세대 시스템 개통일 준수율은 형편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세대 시스템 개통 일정을 한두 차례 연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왜 증권업계의 차세대 프로젝트가 이렇게 곳곳에서 삐걱대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증권업계에서 차세대 시스템 개통일정 지연 사례가 계속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허술한 프로젝트 관리체계를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차세대 프로젝트가 잇따르면서 증권업을 잘 알고 있는 전문 IT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 △프레임워크, J2EE,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등 신기술을 적용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던 점 △프로젝트 기간 동안 법·제도 변경이 잦았던 점 등도 잇단 시스템 개통일정 변경의 주된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증권업계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차세대 프로젝트가 줄이어 진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 중인 증권사나 앞으로 대형 차세대 프로젝트를 추진할 증권사들이 유사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앞서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다른 증권사들의 사례를 유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실패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프로젝트 관리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관리 허술이 가장 큰 문제=최근 추진된 증권업계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은 2000년대 초반 증권전산에 위탁해온 원장업무를 이관한 후 10년 만에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였다. 적게는 200억원, 많게는 600억원 가까운 투자가 이뤄졌다. 게다가 대규모 빅뱅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다양한 위험 요인들을 안고 있었다. 증권업계는 앞서 진행된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서 일정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프로젝트 관리체계의 부실을 꼽았다. 18개월 가량의 프로젝트 일정을 제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것이 당초 예상했던 개통일에 시스템을 오픈하지 못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컨설팅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의 문제점과 진척 현황 등을 정확하게 관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분석, 설계 단계에서 철저하게 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고 개발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향후 추가 개발 및 수정 작업에서 개발 병목현상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증권사들이 개발 기간 동안 품질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나갔다가 시스템 개통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발견돼 애를 먹는 게 일쑤였다. 사실상 개발 막바지 단계에서 발견한 장애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투자증권을 비롯해 많은 증권사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증권사 CIO는 “단계별로 프로젝트의 진척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장애가 테스트작업 시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품질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관리조직(PMO)을 뒀지만 결과적으로 허술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최근 1∼2년간 진행된 증권사들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PMO를 별도로 뒀다. 그만큼 프로젝트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품질도 보장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PMO를 맡은 사업자들 대부분이 증권IT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증권 비즈니스와 연계해 정확하게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일부 증권사 관계자들은 PMO의 역할이 단순 관리 수준에 그쳤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증권IT 전문 인력 부재=전문 인력이 부족했던 것도 큰 문제였다. 이 문제의 경우 차세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증권사 CIO들이 제일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설계 분석을 잘해 놓고도 개발단계에서 어려움을 겪다 보니 당초에 계획했던 일정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증권업계의 경우 원장이관 후 지난 10여년간 특별한 증권IT 이슈가 없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을 구축하는 것 외에 증권 비즈니스용 시스템을 개발해본 경험을 가진 인력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같은 금융권이지만 은행의 경우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많이 진행되면서 지난 몇 년간 관련 전문 인력이 많이 양성됐다. B증권사의 한 CIO는 “대형 SI업체한테 외주 용역을 맡겼는데도 증권IT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특히 여러 증권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발자 품귀현상이 빚어져 필요 인력을 적시에 투입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프로젝트 일정 차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 다른 증권 관계자는 “개발자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개발자의 질적 수준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며 “정부에서 발표한 기술등급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발자들이 대거 투입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 인력의 부족은 모든 증권사들이 겪었던 고충 중의 하나였다. 지나친 하도급업체 혹은 프리랜서 위주의 인력 투입으로 개발인력의 질적 수준이 낮았던 점과 이들의 이동이 잦았던 점 등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이에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개발인력 부족으로 빚어진 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테스트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테스트 기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많은 증권사들은 결국 가동일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24일 시스템을 오픈한 신한금융투자도 당초 7월 13일에서 6주 정도의 기간을 테스트 기간으로 더 연장했다.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 지점 테스트를 더 추가 진행함으로써 오류율을 크게 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술·제도 변화 대응도 문제=증권사들은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신기술을 대폭 적용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시행착오를 많이 겪곤 한다. 사전에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던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이 많아지게 되고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을 줄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지곤 한 것이다. 대신증권의 경우 금융권 최초로 핵심 업무에 자바 기반 프레임워크와 J2EE 기술을 도입했다. 또 컴포넌트 기반 개발(CBD) 방식으로 진행했던 만큼 시작부터 많은 위험 요인을 안고 출발했다. 투입된 개발자들이 J2EE 아키텍처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신기술 적용에 따른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게 대신증권 측의 설명이다. 테스트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 SK증권의 경우도 SK C&C의 ‘넥스코어’ 프레임워크와 함께 X인터넷, SOA 등 최신 기술을 대폭 적용하는데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술적인 부분이 사전 검증되지 않아 어려움이 컸던 곳들도 많았지만 증권사들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와중에 새로운 법이나 규제들이 생기면서 이를 수용해야 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2월 금융업종 간 장벽을 허무는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차세대 프로젝트 시스템에도 관련 내용들을 대폭 적용해야 했다. 또 소액결제시스템도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와중에 개발을 완료해야 했다. 게다가 KRX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으로 주문·체결 전문을 변경하는 작업까지 동시에 이뤄지면서 차세대 프로젝트의 복잡도는 극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일찍 차세대 프로젝트를 오픈했던 대우증권도 외부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글로벌 외환위기로 대차거래 차익 공매가 금지되는 등 크고 작은 규제 변경으로 수정 작업이 많았고, 장기주식저축 등과 같은 새로운 상품이 동시에 개발되면서 프로젝트 기간 동안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업계 전문가는 “증권사들이 다른 업종에 비해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에서 상대적으로 시스템 개통일을 맞추지 못한 사례가 많았던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너무나 많은 업무 구현 요건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며 “차세대 기간 동안 새로운 제도 시행으로 변경 작업과 함께 IFRS, AML 등과 같은 컴플라이언스 이슈도 강화되면서 프로젝트 추진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차세대 시스템의 가동 날짜가 연기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일정을 연기하는 만큼 보다 안정적이고 내실있는 시스템을 갖췄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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