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은 핵심 생산기반기술 중 하나다. 물리적·화학적·전기적 처리로써 소재 및 부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준다. 그래서 표면처리 기술로도 불린다. 단순 플라스틱 장신구를 아름다운 금속 제품으로 보이게 하는 것도 모두 도금 기술의 힘이다. 최종 제품의 가치와 직결되다 보니 그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금 산업의 기반이 취약하다. 영세한 기업들이 대부분인 탓에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약품 등 주요 기자재의 해외 의존도 역시 높다. 또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환경 규제 대응력도 부족하다. 해외 선진 기업들이 친환경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도금 산업 현황=업계에 따르면 세계 도금 시장은 약 106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도금 산업 규모는 4조원으로 추산된다. 규모 면에선 작다고 할 수 없는 세계 9위권이지만 점유율은 3.7%(2005년 기준)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도금 산업은 전형적인 중소기업 업종인 게 사실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국내 도금 업체 수는 지난 2007년 현재 전국 3000여개다. 그런데 이 중 98%가 50인 이하 사업장이다. 98%를 뜯어 보면 더욱 놀랍다. 1∼10인 기업이 전체의 절반이다. 한국의 도금 산업을 이끌고 있는 업체 두 곳 중 하나가 10인 이하의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란 얘기다. 또 11∼30인 기업은 34.2%, 31∼50인 기업은 14% 정도다. 도금 산업을 일명 ‘3D 업종’으로 치부하는 부정적 인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국경제인연합은 지난 2007년 도금 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도금이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자동차·전자·반도체 등과 밀접한 핵심 기반 기술이지만 폐수 발생과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3D·영세 업종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기술력은 떨어지고 도금 약품과 선진 기자재의 해외 의존도는 높아지는 실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미 오래전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도 가속화해 공동화의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높아지는 환경 규제, 어려운 경영 환경=최근 세계적인 산업 환경은 국내 도금 산업에 또 다른 위기와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통신 및 자동차 산업 분야에선 기능 외에 외관 디자인도 중시하는 추세다. 차별화된 디자인이 고부가가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구현하는 도금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덩달아 관련 시장도 커지는 이유다. 여기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도금 산업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특히 규모가 작고 기술력이 부족한 국내 도금 업계에는 우선 위기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도금에 사용되는 물질들은 대부분 중금속이다. 납은 부식 방지 능력이 우수해 수도용 납관, 각종 케이블 피복, 축전지 등에 폭넓게 쓰인다. 크로뮴은 철 제품의 강도를 높여주고 또 표면에 엷게 입히면 미려한 광택을 내기 때문에 니켈과 합금으로 거의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용도가 폭넓다. 특히 크로뮴은 자동차·휴대폰에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하지만 이 중금속들은 유럽연합(EU)이 정한 6대 유해 물질이다. 납(Pb)·카드뮴(Cd)·6가크로뮴(Cr+6)·수은·PBB·PBDE(브로민화 난연제)는 EU의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출이 원천 봉쇄된다. 이 유해물질들 모두가 도금에 이용된 재료다. 높아진 환경 규제는 이미 현실적 장벽이 되고 있다. 국내 노트북 부품업체인 A사는 유럽 기업에 납품한 일부 부품에서 납이 검출돼 전량 반품 조치를 당했다. 납 사용을 금지하는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장신구 업체인 B사는 도금 제품이 니켈 규제에 걸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친환경 기술 개발 절실=전문가들은 도금 기술이 전방 산업인 통신기기·자동차·전자부품 등과 함께 동반 성장하는 기반 기술인 만큼 ‘친환경’과 ‘신공정’ 기술 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또 IT와 융합할 수 있는 핵심 기술도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홍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유럽의 RoHS, 폐전기전자제품 재활용, 신화학 물질관리제도 등 국내외 환경규제 강화 추세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BT·IT·NT 등 신기술과 접목한 기능성 표면가공기술에 적극 눈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무시안·무크로뮴 등 환경친화적 도금 재료 개발과 도금 원료 회수 및 수명 연장 기술 개발이 시급한 과제”라며 “나아가 도금 기업 현장의 애로를 해소하는 데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도금 산업의 잠재력 배양 및 기술혁신을 지원할 수 있도록 종합지원센터 설립도 촉구한 바 있다. 산업 현장에선 정부의 선도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황화익 제이미크론 전무는 “연구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도금 기술과 관련 산업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열처리·계면접합특성, 표면신뢰성평가방법, 해외기술동향 등 여러 가지 시장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기술 전 세계 도금(표면처리) 시장은 100조원 이상 규모다. 이 가운데 기술 분류로는 전기 도금이 전체의 32%, 기계 도장 비중도 33%나 된다. 전기 도금과 기계 도장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계에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도금 기술들은 무엇이 있을까. ◇전기도금=전해용액 중에서 제품을 음극으로 한 뒤 통전(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시켜 표면에 도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장식이나 기능 등을 부여하기 위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응용된다. 비교적 값이 싸고 적절한 금속 피막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나 음향기기·항공기·통신기기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양산품부터 다종 소량품까지 적용이 쉽고 금속 소재나 부도체상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형상에 따라 도금막의 두께가 균일하지 못한 점, 폐수 처리가 필요한 것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도장=방법에 따라서 분무도장·정전도장·전착도장·분체도장 등이 있다. 도장은 금속부터 나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에나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색채나 컬러화가 가장 용이한 기술로 처리 방법이 간편하고 도장의 종류에 따라서 여러 가지 특성을 그 표면에 부여할 수 있다. 단점은 표면 경도가 낮고 용제 휘발형 도료에는 공해 발생의 문제가 있다. ◇화성처리=황화나 산화 등의 화학 반응을 이용해 물품의 표면에 얇은 황화물 또는 산화물의 피막을 생성시키는 방법이다. 철강 도장의 마지막 과정에 사용되는 것으로 인산피막처리(파카라이징)나 아연 도금 등의 후처리(크로메이트), 구리·철의 흑염 처리, 고대색 처리 등이 있다. ◇진공도금=용기 내부를 진공으로 한 뒤 금속이나 산화물·질화물 등을 가스화 또는 이온화해 물품 표면에 증착시키는 방법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기술로 대부분의 금속 소재뿐만 아니라 비금속 소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전기 도금에 비해 고온 처리 공정이 요구돼 단가가 높다. <자료:한국도금공업협동조합> ■해외산업 동향 최근 해외 표면처리(도금) 산업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발전하고 있다. 유해물질 배출억제 등 친환경 공정 개발이 하나며 차세대 연료전지, 대체 에너지 변환소자, 태양전지 등 새로운 시장을 향한 개발 움직임이 또 다른 한 축이다. 부품·소재 강국인 일본이 대표적이다. 철저한 품질 관리 기술이 발달한 일본은 자동차 및 소재 분야의 대형기업이 직접 투자를 선도해 도금 기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생산 현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기술 개선으로 생산성과 환경성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근래에는 고부가가치형 첨단 기술 개발을 병행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통산성 주관하에 생산기반 조성과 미래 핵심기술 분야인 BT·IT·NT 등과의 접목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미국의 도금 기업들은 이미 다국적 협력 체제를 구축, 대형화한 곳이 적지 않다. 미국 도금 기업들은 지금까지 꾸준한 연구개발로 친환경, 고품질화, 고기능화, 고능률화 도금 기술을 지속적으로 탄생시켜 왔다. 또 최근에는 전자 부품의 초소형화, 회로 기판의 초미세화 추세에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소형 연료전지 생산 공정에 적용할 차세대 도금 기술 개발도 한창이다. 프랑스는 정부 주도 아래 고급 기술인력 양성과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도금 업체 상당수가 대기업의 협력사 혹은 자회사인 사례가 많다. 대기업에 속하다 보니 기술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있고 표준화도 잘 이뤄졌다는 평가다. 이 밖에 독일은 도금 기업들의 애로점을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특성화된 연구소를 거쳐 도금 산업을 육성 중이며 오스트리아는 플라즈마화학기증착(PECVD) 코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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