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이 살아나고 있다. 멈춰 있던 반도체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가고 매출은 늘고 있다. 최악의 불황에 허덕였던 반도체 경기의 끝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시장 조사 업체인 가트너는 당초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이 마이너스 22.4%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가트너는 최근 이를 마이너스 17%로 상향 조정했다. “전 세계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펼쳐 반도체 수요가 강화됐다”는 게 이유지만 회복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다는 의미다. 내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성장이 확실시된다. 주목되는 점은 반도체 산업 회복 중심에 우리 기업들이 포진해 새로운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이란 점이다. ◇‘살아난 반도체’=국내 반도체 경기 회복의 청신호는 3분기 들어 켜졌다. 전통적인 수출 효자 품목이던 반도체 수출이 되살아난 것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9월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36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6년 12월 37억300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가장 많은 규모며, 1년이 넘도록 감소세를 면치 못하던 것이 1년 3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결과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 8월 우리나라 수출품목 1위를 탈환했다.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는 28억8000만달러로 10대 수출 주력 품목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07년 9월 이후 휴대폰·자동차·조선 등에 내줬던 1위 자리를 1년 11개월 만에 탈환한 ‘왕의 귀환’이었다. 반도체의 수출 1위 차지는 9월에도 이어졌다. 반도체가 이처럼 극적으로 회복된 이유는 반도체 가격이 급격히 회복한 영향이 크다. 지난해 12월 개당 0.66달러에 그치던 D램 가격(1G DDR2 기준)은 지난 5월 1달러대를 회복한 이후 9월 2달러대에 진입했다. 낸드플래시 가격(8G 기준)도 지난해 12월 1.16달러 수준이던 것이 지난 5월에는 3.73달러로, 8월에는 4.39달러로 뛰었다. 강명수 지경부 수출입과장은 “세계경기 회복으로 소비가 살아나고 있고, 소비와 밀접한 대표적인 IT품목인 반도체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돋보이는 국내 기업들=그러나 반도체 수출이 살아난 이유는 가격 상승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한 세계 경기침체란 쓰나미 속에서도 살아 남은 우리 반도체 산업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경기침체에서 미국과 독일·대만의 반도체 경쟁사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미국과 독일의 일부 반도체 기업이 파산하고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은 정부의 공적자금에 의존해 연명했다. 우리 반도체 기업은 이와 달리 기술 경쟁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어느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싸운다는 ‘메모리 치킨게임’에서 우리나라 기업들만 승자대열에 합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세계 1위 D램 업체인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업계에서 가장 먼저 흑자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 2위 D램 기업인 하이닉스도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흑자 전환이 예상되는 엘피다는 그 규모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미국 마이크론, 대만 난야 등 각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저점을 찍고 상승 국면에 들어선 현재 ‘승자의 열매’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가져가게 되는 이유다. ◇파운드리·팹리스도 살아나나=국내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인 매그나칩은 지난 9월 창사 이래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다. 한 달 동안 8인치 기준 8만200장의 웨이퍼를 생산, 지금까지 최대 실적이었던 올 6월의 6만3000장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9월 실적은 금융위기 직전인 작년 동기와 비교해도 63%나 늘어난 수치였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위탁 생산이다. 반도체 설계 업체, 즉 팹리스 기업들이 생산을 주문하면 파운드리 업체들이 대신 반도체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파운드리 기업의 생산량 증가는 전방 산업인 팹리스 사업 호조로 풀이할 수 있다. 올 1분기 60%대에 머물렀던 매그나칩의 전체 가동률은 2분기 이래 95% 수준을 지속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팹은 수개월 전부터 100% 풀가동 중이다. 국내 파운드리 3위 업체인 동부하이텍 역시 3월 이래 90%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실한 우위를 점한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계 경쟁력이 취약한 파운드리와 팹리스 산업이지만 경기 회복에 따른 기회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10년 만에 연매출 2000억원이 넘는 팹리스 기업 탄생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전상헌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입증된 순간”이라며 “이제 우리 반도체산업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펼쳐질 세계 반도체산업 질서 재편의 기회를 활용해 진정한 반도체 산업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약을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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