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은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사용해온 PLM 시스템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제품 출시 주기와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양 사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기업들과 경쟁하는 만큼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마케팅·생산 등 관련 부문간 정보 연계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현대중공업은 올 1월부터 전사 PLM 시스템 구축 작업을 시작했으며, 삼성전자는 지난 9월부터 PL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양사 모두 동종 업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PLM 인프라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삼성전자가 기존 PLM 패키지를 도입하는 방식이 아닌 자체 개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PLM 패키지를 도입하되 무려 80∼90%를 커스터마이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이 PLM 패키지의 프레임워크 등 일부만 사용하고 대부분의 기능을 직접 개발하기로 한 만큼 사실상 두 회사 모두 자체 개발로 PLM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격이다. 전문가들은 양 사의 이런 움직임을 ‘차세대 PLM’ 구축 프로젝트라고 명명한다. 현재 사용중인 PLM의 활용범위와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목표(to-be) 모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현대자동차 CJ제일제당 등 다른 산업의 대기업들도 유사한 PLM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이 업계에 불고 있는 차세대형 PLM 인프라 구축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분위기다. 왜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들은 상용 패키지를 놔두고 굳이 대규모 커스터마이징이나 자체 개발 같은 ‘위험한’ 방식을 도입하면서까지 전사 PLM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려 할까. 이들이 새 PLM 인프라를 통해 얻고자 하는 기대효과는 무엇일까.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중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뒤처진다고 평가받아왔던 PLM 분야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분석해봤다.
삼성전자는 총 3년에 걸쳐 이번 PLM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10년 7월까지 개발부문 중심의 1단계 프로젝트를 거쳐 최종 3단계 프로젝트에서는 제품 전략과 제품 수명주기(PLC)을 연계하는 수준까지 구현할 계획이다. 앞서 올 1월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한 현대중공업은 2010년 5월까지 1단계 프로젝트에서 자재구매·개발·생산을 연계한 시스템을 구축한 후 2단계 프로젝트에서 PLM시스템과 영업, 지식관리시스템을 연계할 예정이다. 2단계 프로젝트 일정은 1단계가 완료된 후 확정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PLM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발부문과 마케팅부문간 가시성 확보 △개발효율 증대△개발자원과 원가 관리 강화△주요 프로세스 및 시스템간 연계 등을 주요 추진목표로 내세웠다. 현대중공업 PLM 프로젝트의 주요 추진목표는 △개발부문과 생산, 자재구매 부서간 정보 공유 △선박 설계기간 단축 △주요 시스템간 연계 △선박 품질 향상 등이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 PLM 프로젝트의 추진 목표는 동일하다. 즉 개발 체계와 프로세스를 전사의 주요 메가 프로세스와 연계·통합함으로써 PLC 전반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하고 개발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사는 기존에 중복돼 있거나 자체개발로 한정된 영역에서만 사용하던 PLM 시스템을 전사 차원에서 단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각 부문의 관련 시스템들과 연계해 나갈 계획이다. ◇실시간 소통 위한 ‘가시성’ 절실=현재 차세대 PLM 시스템을 구축중인 삼성전자나 현대중공업이나 유사한 프로젝를 고민하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의 가장 두드러진 요구는 개발부문과 다른 부문간의 의사소통 혁신이다. 즉 개발부문과 생산, 마케팅, 영업부문 등 타 부문이 PLC에 관한 정보 공유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정보 공유를 통해 가시성을 확보하는 것은 비용 절감, 품질 향상, 납기 단축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이 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 외에도 현재 PLM 프로젝트를 검토 중인 현대자동차, CJ제일제당, 대상주식회사, 신도리코, 만도 등 많은 제조기업들이 개발부문과 타 부문간 실시간 정보공유 및 유기적 협업을 핵심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PLM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발·마케팅부문과 PLC의 운영최적화’를 핵심 추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업무실행 효율성 제고, 가시성 고도화 및 인프라 비용 절감, PLC 운영효율성 제고 등 3대 과제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식품업계의 요구도 유사하다. PLM 솔루션 검토를 진행 중인 CJ제일제당의 이상몽 상무는 “영업부문에서 제품을 기획해 이 정보가 개발부문으로 전달되면 개발부문에서 제공 가능한 납기일과 사양을 제시하고, 이 정보는 즉시 영업 제안에 활용될 수 있도록 PLM에서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이 양산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유관 부서간의 원활한 정보 소통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조선사업에 특화된 한국형 통합 PLM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내년 5월까지 진행될 1단계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를 개발부문과 자재구매 및 생산 부문간 정보 공유로 설정했다. 김승석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장은 “PLM 구축을 통해 설계정보가 실시간으로 자재구매 부문 및 생산부문과 연계되도록 함으로써 선박 설계와 제조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제품 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차후 2단계 프로젝트를 통해 영업부문까지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구현되면 현대중공업의 영업사원들은 각종 주문 요구에 대해 구체적인 선박 설계 정보를 기반으로 견적을 낼 수 있게 된다. 보다 빠르게 정확한 견적가 산출이 가능해지는 만큼 수익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RP, SCM 등과 통합 필요=전사적자원관리(ERP)와 공급망관리(SCM) 등 핵심 애플리케이션과 PLM을 연계하는 것도 PLM 인프라 고도화의 핵심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글로벌 ERP 및 SCM에 현재 개발중인 차세대 PLM을 연계할 계획이며, 삼성SDI는 이미 구축한 PLM에 현재 구축중인 글로벌 SCM을 연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현욱 삼성SDI 전자개발1팀 개발혁신담당 부장은 “PLM과 SCM을 연계하면 고객에게 더 정확한 납기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정해진 시점에 납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개발 런 계획 등을 사전에 생산계획스케쥴링(APS)에 반영할 수 있게 되면 양산에 앞서 원하는 시점에 개발 납기를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PLM에서 수립한 양산 일정이 SCM을 구현하는 핵심 시스템인 APS로 연계되고, 개발용 자재 구매에 대한 정보도 APS에서 사전에 생산계획에 반영해 원활한 자재공급이 가능해진다. 또 단종관리를 위해 마케팅에서 단종 제품에 대한 정보를 PLM에 입력하면 개발부문은 더 이상 해당 제품의 개선 등에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지고, 생산부문에서도 단종 일정을 고려한 생산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ERP와의 연계도 주요 이슈다. 기존에는 주요 개발 자재를 구매할 때 이메일 등을 이용해 구매부서에 자재 발주를 의뢰하고 구매부서에서 이를 받아 ERP에서 별도의 구매 프로세스를 밟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개발부서는 발주한 자재의 입고 시기를 항상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물어봐야 했고 구매부서는 구매 이력 관리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차세대 PLM을 구현하면 개발자재 요청서의 데이터가 자동으로 ERP로 전송돼 발주로 이어지고 자재 입고 시기도 투명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삼성전자처럼 ERP와 SCM 시스템 등 IT 인프라가 고도화된 기업일 수록 시스템 연계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현대중공업은 PLM과 ERP를 연계해 설계 정보가 PLM을 통해 ERP로 전송돼 자재구매와 직결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승석 현대중공업 부장은 “기존에는 캐드로 설계한 정보를 토대로 수작업으로 종합적 자재물량을 다시 작성해 구매부서의 ERP로 전달하는 이중 작업이 필요했다”며 “도면과 자재 구매 정보를 추출해 ERP에 연계하고 생산부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2단계 프로젝트에서 PLM 시스템을 지식관리시스템과 통합해 연구개발 단계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하나의 시스템을 통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기반의 전사 PLM 구축을 통해 PLM과 다른 애플리케이션과의 원활한 연계와 통합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PLM과 별도로 분리돼 있던 각종 시스템들을 PLM과 연계하고, 제품 개발의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생산, 폐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코드로 모든 이력을 검색 및 활용하려는 시도는 앞으로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결국 ‘프로세스’와 기준정보=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PLM 인프라를 고민하게 되면서, 기업들의 관심사가 이제는 PLM 패키지 자체 보다는 통합 PLM 환경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전사 프로세스 정비 및 표준화로 옮겨지고 있다. 특히 PLC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목하게 되면서 개발부문과 타 부서를 연계하고 개발 정보에 대한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차세대 PLM을 고민하는 기업들 중 상당수는 PLM 패키지 솔루션을 도입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커스터마이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심지어 현대중공업처럼 70∼80%의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업들도 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PLM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외산 PLM 패키지를 선정해 놓고도 다시 개발방식을 자체 개발로 선회한 것도 이런 고민을 거친 결과다. 차세대 PLM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최적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삼성SDI의 경우 PLM 패키지를 도입했지만 패키지의 구조를 90% 이상 변형해 자사 프로세스에 맞도록 최적화하기도 했다. 각 부문·시스템에 중복돼 있거나 신뢰도가 떨어지는 각종 기준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도 차세대 PLM의 중요 과제 중 하나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차세대 PLM 프로젝트를 통해 프로젝트 자재명세서(P-BOM), 기존 PDM시스템 등에 중복해서 존재하던 각종 데이터와 기능을 통합할 계획이다. 지멘스 PLM 솔루션을 도입한 현대중공업도 실제 조선산업에 특화된 프로세스를 위해서는 약 80% 이상의 솔루션 커스터마이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BOM 시스템이 관건이다. 하나의 선박에 100만개 이상의 부품이 탑재되는 조선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단납기가 강조되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문화도 외산 PLM 패키지가 적합하지 않은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김승석 현대중공업 부장은 “한국의 조선산업에서는 해외와 달리 단납기 프로세스가 강조된다”며 “수 많은 부품을 조달하면서도 빠르게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BOM 시스템을 특화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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