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산업을 살리자고요? SW 구매 담당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한 푼이라도 가격을 깎아야 승진하는 상황입니다. SW 불법복제가 일어나는 것도 결국은 같은 이치입니다.” SW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 한 SW 기업 CEO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공무원도 다르지 않다”며 “SW 가격을 깎은 게 마치 국민의 혈세를 아껴 국위선양에 이바지한 양 자랑스러워하고 조달청에 등록된 SW 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낮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SW 업계가 바라는 것은 국산 SW 업계에 특혜를 몰아주는 게 아니다”며 “그저 SW 업계가 노력한 대가에 합당한 금액으로 SW가 사고팔리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해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SW 기업육성책을 내놓고 있지만, SW 가치를 인정해 주는 환경을 먼저 조성하지 않으면 글로벌 SW 기업 육성은 요원하다. 낮은 유지보수율, 가격깎기 등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악습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SW 가치 인정하지 않고선, 불법복제 막을 수 없다=콘텐츠 기업인 A사는 한 건설사로부터 조감도를 만드는 사업을 수주했다. 견적서에는 조감도 제작에 필요한 SW 구매 항목도 넣었다.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품이 필요하듯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합당한 SW 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사는 견적서에 나와 있는 SW 항목을 지우고 가격 협상을 시작했다. A사의 CEO는 “고객이 SW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지를 맞추려다 보니 SW 불법복제를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고가의 외산 SW는 단속이 무서워라도 정품을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 고가의 제품인만큼 합의금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SW에는 오히려 불법복제에 적발되면 해당 SW 기업을 원망한다. 단속반도 중소기업의 SW에는 관심이 덜하다고 중소 SW 기업들은 지적했다. 중소SW 기업의 CEO는 “중소기업이 불법복제 고발을 하면 신경도 안 쓴다”며 “제품 개발하는 데도 벅찬 중기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금액도 몇 십만원이 채 안 되는 제품으로 법정까지 끌고 가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CEO는 “불법복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설치된 것을 삭제하겠다는 말을 듣는 것으로 족하다”며 “되레 우리가 몇 카피라도 사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도대체 몇 명이 SW를 쓰는가…저작권도 인정 안 해=SW 실이용자 수 깎기도 다반사다. 이른바 커스터마이징으로 실사용자 기준 계약도 저작권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다. 계약에는 200명의 사용자가 쓰는 것으로 해 SW를 설치해줬으나 이용자가 300명 수준으로 늘었다고 재계약을 하는 사례는 드물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통폐합으로 사용자가 늘었지만, 재계약을 한 SW 기업들은 몇 안 된다. 임희섭 한국SW전문기업협회 팀장은 “한 명만 사용하기로 한 SW를 여러 명이 쓰는 것은 라이선스 위반”이라며 “처음부터 200명의 이용자가 쓰지만 100명만 사용하는 것처럼 계약을 하는 일도 많다. 기본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니 저작권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도산하면 유지보수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저작권을 내놓으라는 사례도 있다. 마치 해당 기업에 SW 개발 용역을 준 것처럼 대접한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커스터마이징 SW를 마치 용역 SW처럼 저작권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저작권을 넘긴 기업은 향후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SW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기대도 하기 힘들다. 정상적으로 SW의 가치를 지급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비용을 줄여야 하지만, SW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SW 비용을 줄이려는 것이다. ◇낮은 유지보수, 외산의 절반도 안 돼=턱없이 낮은 유지보수요율도 같은 문제에서 비롯된다. 국내 SW 기업들이 공공기관의 SW 유지보수료는 평균 7.8%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유지보수료가 15∼2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 된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받는 유지보수율도 평균 15%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당시 GS인증협회(현 한국SW전문기업협회)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는 15∼20%에 해당하는 높은 유지보수율을 벌어들이는 사례가 40% 정도였다. 정보보호 SW 업계에는 아직 유지보수요율과 관련한 공식적 통계도 없다. 전자신문이 국내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주요 정보보호 SW 9개사를 대상으로 지난 2006년부터 2009년 4월까지 유지보수 요율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내 공공 부문 정보보호 SW 유지보수 요율은 평균 7.8%, 대기업과 금융권을 포함한 민간 부문은 10.3%에 불과했다. 유료 유지보수 전환 비율도 낮았다. 국내 정보보호업계는 관행적으로 제품 공급 시 1년 무료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한다. 1년 무상 유지보수 계약을 기준으로 A업체는 공공 부문 유료전환률이 80%였고, 민간 부문이 97%였다. B정보보호업체는 공공 17%, 기업 19∼24%였다. 낮은 유지보수 요율은 고스란히 업계의 부담으로 지워진다. 박능수 건국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SW는 개발자의 수많은 땀과 노력이 들어가 있는 무형의 자산”이라며 “SW 저평가는 결국 SW 인력의 대우를 열악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타 제조업의 경쟁력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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