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최종 소비되는 에너지 중 주택이나 상업·공공 건물 내에서 쓰이는 비율은 25% 내외다. 외화와 맞바꾼 에너지의 4분의 1을 건물 냉난방과 조명 등에 사용하는 셈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13% 정도로 결코 적지 않다. 정부가 ‘그린홈 100만호 보급사업’을 통해 건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적극 나서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적은 양의 에너지로 건물 전체를 냉난방할 수 있는 히트펌프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히트펌프는 자연에 존재하는 열을 흡수·압축해 난방에 사용하거나, 냉기를 끌어와 실내온도를 낮춰주는 고효율 기기다. 특히 땅속은 150m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섭씨 15도 정도로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지열 히트펌프가 각광받고 있다. 15도에 약간의 열을 더해 난방에 사용하거나 여름에는 냉기를 이용, 에어컨을 가동할 수도 있다. 지열 히트펌프는 실내로 열을 전달하는 물질에 따라 물·공기 방식과 물·물 방식으로 나뉜다. 물·공기 방식은 부품 국산화가 상당 부분 이뤄진 상태다. 그러나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고효율화의 R&D가 진행돼야 한다. 물·물 방식은 핵심부품 대부분을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어 국산 기술 개발이 절실하다. ◇물·공기 지열 히트펌프, 효율을 높여라=물·공기 지열 히트펌프 시스템 내에서 원가비중이 가장 높은 부분이 압축기다. 시스템 가격 중 23.2%를 차지한다. 압축기는 열·냉기를 포함한 공기를 압축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자사 히트펌프에 사용하고 있는 압축기는 대부분 국산제품이다. 그러나 향후 히트펌프 시장이 확대됐을 때 해외 업체들과 승부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한 효율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압축기 기술개발은 같은 양의 전기로 더 많은 공기를 단시간에 압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1∼3년 내에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품은 ‘고효율 인버터형 압축기’가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고효율 인버터형 압축기는 냉난방 설정온도가 변화함에 따라 압축기 회전속도를 조절해도 히트펌프 성능이 저하되지 않는 제품을 의미한다. 현재 국내외 히트펌프에서 사용되는 압축기는 회전 수를 조절하면 냉난방 효율이 떨어진다. 유호선 숭실대 교수는 “압축기는 최대 냉난방 부하를 고려해 규격을 설정하지만 평상시에 사용하는 부하량은 30∼70%로 차이가 크다”며 “냉난방 부하 수준에 따라 압축기를 조절해도 효율이 떨어지지 않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고효율 인버터형 압축기 개발의 숙제”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윤활유를 사용하지 않는 ‘오일리스 압축기’를 상용화하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 압축기는 모터의 회전운동 시 마모를 일으키지 않도록 윤활유 공급부와 흡수부가 부착돼 있다. 그러나 흡수부가 사용한 윤활유를 미처 제거하지 못하면 히트펌프 작동과 함께 윤활유가 냉매에 섞인다. 냉난방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박성룡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일부 일본 업체가 오일리스 압축기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바 있다”며 “윤활유 없이도 마찰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압축기 재질을 특수가공하는 기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냉장고 등 가전기기에만 쓰이는 ‘선형 압축기(리니어 컴프레서)’를 냉난방 용도로 개발하기도 한다. 현재 사용되는 압축기는 마치 자동차 엔진처럼 모터의 원운동을 수직운동으로 바꾸면서 모인 공기를 압축한다. 운동형태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정량의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소음도 크다. 선형 압축기는 처음부터 수직운동 힘을 만들어 사용한다. 유호선 교수는 “선형 압축기는 아직 냉장고에 들어가는 소형 기기에만 사용된다”며 “대용량으로 개발하는 데만 성공하면 고효율 히트펌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축기 다음으로 원가비중에서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판형 열교환기다. 전체 시스템 가격의 17.4% 정도다. 판형 열교환기는 땅속의 열이나 냉기를 매질과 접촉시켜 열·냉기를 가져오는 부분이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열을 교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냉매와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열교환 속도는 높아지지만 시스템 크기가 커진다. 박성룡 책임연구원은 “열교환기 재질이나 매질을 열전달 속도가 빠른 소재로 대체하는 등 관련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며 “금속을 고온으로 녹여 성형하는 기술도 고효율 열교환기를 개발하는 데 필수”라고 주장했다. ◇물·물 지열 히트펌프, 외산 의존도 심각=물·공기 지열 히트펌프에 비해 물·물 지열 히트펌프는 부품 국산화가 극히 낮은 편이다. 압축기·열교환기는 물론이고 밸브·제어기까지 외산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물·공기 지열히트펌프와 달리 물·물 지열 히트펌프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열리는 바람에 고난도 핵심기술 개발에 소홀했다”며 “시장이 커질수록 해외 부품의존도만 심화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물·물 지열 히트펌프에서 압축기·열교환기가 원가 중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2.8%·35%에 이른다. 현재 미국 코퍼랜드와 일본 미쓰비시에서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열교환기는 스웨덴 알파라발과 덴마크 APV·독일 GEA를 거쳐 들여온다. 밸브·제어기는 중국 중소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며 원가의 15.2% 정도를 차지한다. 기술장벽 낮은 각종 외장재과 배관류는 국내에서 공급하지만 원가비중은 각각 10.8%·9.7%에 불과하다. 장기창 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원은 “그동안 국내외 히트펌프 시장 규모가 작았던 점도 핵심 부품 개발을 등한시해온 이유”라며 “선진 업체들과의 기술교류나 생산기지 유치 등으로 해외 기술을 들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열 히트펌프, 전기요금 걱정 ’끝’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지열 히트펌프 사용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다름아닌 전기요금이었다. 지열 히트펌프는 냉방은 물론이고 난방시에도 석유나 가스가 아닌 전기를 이용한다. 화석연료를 직접 땔 때보다 에너지가 적게 사용되지만 순수 전기만 사용하는 탓에 일반 가정에서는 자칫 ‘전기요금 누진제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한국 가정의 한 달 평균 전기 사용량은 230㎾h 안팎이다. 300㎾h까지 1㎾h당 168.3원이 부과된다. 300㎾h를 넘어서는 순간 1㎾h당 248.6원으로 가격이 급격히 뛴다. 전력수요가 많은 여름, 히트펌프 사용전력까지 더하면 자칫 천문학적인 전기요금을 납부해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히트펌프 시장은 쉽사리 성장하지 못했고, 후방산업 기술에 대한 투자도 미진한 원인이 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도 지난 5월 지식경제부가 지열 히트펌프 누진제를 폐지하면서 말끔히 해소됐다. 지열 히트펌프에서 사용한 전력에 한해 일반용 요금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열 히트펌프 외 월 평균 전력사용량이 300㎾h인 100㎡ 단독주택의 겨울철 월평균 난방비는 31만원에서 6만원으로, 여름철 월 냉방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지경부는 천연가스(LNG) 난방가구 5만호를 지열냉난방설비로 교체할 때 연간 2만2000톤의 LNG 수입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했다. 야타베 다카시 일본 히트펌프 축열센터 기술연구부장은 “일본은 전기요금 누진율이 크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약 5년 안에 히트펌프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제성이 히트펌프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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