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대한민국 IT 3총사의 위기 탈출 속도가 매섭다. 3총사는 지난달 총 77억달러의 수출로, 우리나라 전체 산업 수출액의 23.5%를 담당했다. 디스플레이는 매달 수출액 신기록을 경신하며 전세계 점유율 60% 달성을 눈앞에 뒀다. 반도체는 치킨게임의 출구에서 앞으로 뛸 일만 남겨놓고 있다. 휴대폰은 북미·유럽시장을 강타하며 세계시장 점유율 30% 고지를 넘었다. 대한민국 재도약의 엔진이자 희망인 IT 3총사의 글로벌시장 성과와 전망을 긴급 점검한다. 이번 메모리 치킨게임의 최대 피해자는 독일 인피니언테크놀로지의 메모리 제조부문 자회사 키몬다다. 키몬다는 최근 독일과 미국 공장에 있는 300㎜ 웨이퍼 가공설비의 매각결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매쿼리일렉트로닉스가 독일 드레스덴 공장의 300㎜ 설비 전매 우선대상자로 지명됐다. 주요 설비를 매각한다는 것은 사실상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앞서 키몬다는 드레스덴 포토마스크 센터를 비롯해 상당수의 자산을 매각 완료했다. 세계 3위 메모리 업체인 일본의 엘피다메모리도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엘피다메모리는 일본 정부가 기업에 금융지원을 하기 위해 만든 ‘개정 산업활력재생법’의 발효와 동시에 공적 자금신청 1호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메모리 공급과잉과 수요침체에 따른 메모리 가격 폭락으로 실적이 악화되면서 2008회계년도(2009년 3월 결산)에 1788억엔(약 2조354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엘피다메모리는 지난 3월말에도 제3자 할당증자 방식으로 460억엔을 조달, 경영부실을 틀어막은 바 있어 이번에 최대 400억엔의 공적자금을 수혈받더라도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경우 다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선 세계 최대 노어형 플래시메모리 제조업체인 미국의 스팬션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지난 3월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전세계 노어형 플래시메모리 시장의 4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과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플래시메모리 전체 시장에서도 세계 3위를 기록 중이던 스팬션은 3월말 현재 24억달러 규모의 부채와 2억6000만달러의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한 채 두 손을 들었다. 3000명의 직원 감원과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재활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회생 후에도 후유증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다수의 메모리 제조업체가 포진돼 있는 대만은 메모리 업계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대만 최대 D램 업체인 난야테크놀로지는 1분기 영업손실률이 무려 135.2%에 달했고 이노테라메모리스도 영업손실률 72.6%를 기록했다. 대만 정부는 자국 D램 산업이 적자에 시달리며 한계 상황에 이르자 공적 자금 투입을 약속하며 업체간 통합을 유도하는 구조조정을 연초부터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해 관계가 다른 업체들의 반발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정부의 재건 계획도 변화하는 등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당초 대만 정부는 ‘타이완메모리’ 중심으로 100억 대만달러를 투입할 방침이었으나 최근에는 해외 기술 파트너사를 확보한 기업들에게 최대 300억 대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 IT 전문 매체인 디지타임스는 현재의 대만 D램 산업을 두고 “최악의 불황 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방법을 찾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돈도 시장점유율도 모두 잃는 등 살아 남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텔의 대만 투자설이 흘러나오는 등 각종 소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만 D램 업체들의 회복을 장담하는 신호들이 전무한 상태다. 앤드류 도어우드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대만 D램 업계 상황은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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