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이 미국 국가과학재단(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처럼 세계적인 지원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 우선 그 분야에 정통하면서도 윤리 도덕성을 겸비한 프로젝트관리자(PM) 선발하는 데 힘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박찬모 대통령 과기특보(74)가 26일 새로 출범하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한국연구재단은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전 분야를 아우르는 초대형 연구관리기관이다. 올해 예산만 2조7000억원에 달하며 2012년에는 4조원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연구재단의 본보기였던 미국 국가과학재단(NSF)은 지난 1950년에 설립돼 미국을 현재와 같은 과학 초강국으로 이끈 밑거름이었다. NSF가 지난 2007년을 기준으로 지원한 금액은 약 5조5000억원. 아직 한국연구재단이 NSF에 비해 규모는 적지만 국가 GDP를 감안하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푸는 셈이다. 박찬모 초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이러한 중책을 맡을 가장 적임자로 꼽힌다. 인선과정에서도 잡음이 없었다. 박 이사장은 포스텍 총장시절 포스텍 개혁을 이끌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과학 공약인 ‘577이니셔티브(2012년까지 GDP 5%투자, 7대 과학강국 도약)’도 함께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교감을 통해 초기 한국연구재단의 개혁은 물론 재단운영과정에 필수적인 탁월성, 효율성, 공정성, 전문성 등의 요소를 이끌 인물로 평가된다. 박 이사장은 한국연구재단 성패를 훌륭한 프로젝트 관리자(PM)의 선정과 역할 강화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PM은 연구 과제 기획부터 평가에 이르는 개발 전주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PM은 전공분야에서 최상급일뿐 아니라 윤리 도덕성도 탁월해야 한다”며 “PM에게 전적인 권한을 주되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물을 계획”이라고 한국연구재단의 기본 방향을 정리했다. 인문분야를 지원해온 한국학술진흥재단과 과학 분야를 맡아온 한국과학재단의 통합으로 일부 인문분야에서는 지원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 이사장은 이에 대해 “ 21세기는 융·복합 시대로 IT·BT·NT 융합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예술, 문화 등과 신기술의 융합, 신기술과 자동차, 조선 등 전통산업과의 융합이 모두 필수적”이라며 “연구재단 발족으로 오히려 인문·예술·문화 등과 신기술의 융합이 더욱 활성화 되고 지원도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서 그동안 과학, 인문 분야에서 엇비슷한 주제를 제출해 양쪽에서 지원받는 사례가 있었으나 재단통합으로 이제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직 운영에 대해서는 “당분간 3개 기관이 통합되면서 조직적인 융화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선 조직 개편시 3개 기관의 직원을 가능하면 골고루 섞어 배치하고 기관별로 다른 제도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통합하겠다”고 제시했다. 연구재단으로서는 드물게 전사자원관리(ERP)를 도입, 기관 운영의 효율성과 선진성도 제고할 계획이다. 박 이사장이 한국연구재단의 운영과 관련해서 중시하는 것은 국가 대표 연구지원기관으로서의 위상 강화다. 박 이사장은 “미국의 NSF는 대통령이 이사장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며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은 법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이사장을 임명하게 돼 있어 위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인원이 30여명에 불과한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의 이사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데 직원수만 300여명에 이르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못하는 것은 모양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부분을 개선해 2대 이사장부터는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제도 개선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학계 원로답게 우리나라 과학 풍토에도 근심이 많다. 특히 예전처럼 훌륭한 인재가 순수과학이나 공학보다는 의학을 선호하고 그러다보니 과학분야나 산업분야에도 인재유입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 걱정이 많다. 그는 “우리나라 출연연의 정년은 61세지만 미국은 아예 정년이란 것이 없고 비교대상인 교수는 65세”라며 “이 부분으로 인해 연구원이나 과학자들의 사기가 낮다”고 진단했다. 또 “국민 전체가 과학기술자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공헌한 것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존경하면 좋은데, 부모들은 애들한테 과학기술자 되면 굶어죽는다고 얘기를 한다”며 “지난 과학의 날에 대통령이 10명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봤더니 그중 과학기술자 되겠다는 사람 2명에 그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관적인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박 이사장은 “앞으로 의사도 재래식 의사로는 안 된다”며 “과학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앞으로 유능한 의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과 의학도 융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배 과학자나 IT업계에도 분발을 요구했다. 그는 “과학자나 IT업계에도 스타 과학자, 스타 CEO가 나와야 한다”며 “그래야지 더 많은 사람이 이공계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포스텍 총장시절에 스타급 과학자를 모시기 위해 이사회 허가를 받아 영입작업을 진행했다”며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영입에 진전이 없었는 데 그 이유중의 하나가 해당과 교수들의 반발”이었다고 소개했다. 앞으로의 국가 R&D 지원 방향에 정치적인 논리를 배제하고 잘할 수 있는 곳에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소신이다. 박 이사장은 “나노기술 집적센터가 국책과제로 나왔을 때 포스텍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응모했고 포스텍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결국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여러 지역에 예산이 분배됐다”며 “국민이 낸 세금은 나노기술 발전과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써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치적 논리가 들어가면 효율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박 이사장은 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다. 한쪽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기술계를 무시하고 IT업계를 홀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박 이사장은 이러한 목소리를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는 과학기술계나 IT업계에서 제기한 ‘홀대론’은 이대통령을 몰라서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박 이사장은 “대통령은 절대로 IT나 과학기술 분야 홀대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내가 당선인 자문위원일때 교육부와 과기부를 합친다고 하기에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교육부의 예산의 80∼90%는 초중고 지원인데 이 부분은 지자체로 이양하고 교육부문은 고등교육과 인력양성만을 하게 된다”며 “결국 과학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는 “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꼭 과기계 사람으로 뽑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실행했다”며 “그런데 초중고 교육 부문의 지자체 이관 문제가 관료들의 반발로 무산되며 취지가 어긋났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국가 R&D예산 추이를 봐도 GDP 대비 R&D비중은 OECD국가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며 “대통령은 2012년까지 국가 R&D 투자비율은 GDP대비 5%까지 확대하는 등 어느 정부보다도 R&D 예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남북과학교류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 이사장이 진행하고 있는 평양 과기대 설립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수시로 진행사항을 물으면서 남북 과학교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이사장은 “과기 특보를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대통령과 원로 과학자간의 간담회를 마련한 것”이라며 “이후에도 출연연구원 기관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등 대통령께서 각계 각층의 과학기술계 인사를 만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대통령도 흔쾌히 만났다”며 과기계와의 소통도 원할했다고 평가했다. 후임 특보에 대해서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후임 과기특보가 어느 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대통령의 과학공약을 충분히 숙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행정부와 청와대 및 국회에 과학기술자 수가 너무 적은 게 사실”이라며 “이러한 인사 문제도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건의해주시기를 당부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구축차원에서 진행한 ‘과학기술정책조정협의회’와 ‘출연연 정책협의회’가 각각 2회씩 진행됐는 데 후임 과기 특보가 이를 잘 맡아 발전시켜 실효를 거뒀으면 한다”며 “물론 대통령에게 과학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박찬모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1935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 미국 메릴렌드대학에서 석·박사를 한 뒤 이후 미국에서 연구원과 교수로 재직했다. 포스텍 초대 총장을 지낸 김호길 박사(1994년 작고)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설립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포스텍 교수로 부임한 뒤 4대 총장을 역임했다. 북한과의 IT 및 과학 교류에도 관심이 많아 평양 과기대 공동설립위원장을 역임 중이다. 좌우명은 고진감래와 외유내강이다. ◆한국연구재단은 한국연구재단은 옛 과기부에서 이공계 연구지원을 맡아온 한국과학재단과 이공계 국제협력사업을 진행해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옛 교육부에서 인문계 지원을 담당해온 학술연구재단을 통합해 만들어진다. 이사장, 감사, 사무총장, 5본부·2센터·33단으로 구성되며 연구사업관리전문가(PM)가 중심이 돼 운용된다. 인력은 기존 3개 재단 인력을 흡수 통합해 대략 300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재단이 관리하는 올해 연구개발(R&D) 사업 규모는 전체 정부 R&D의 21.1%인 2조6081억원(출연금 389억원+정부위탁관리연구사업 2조5698억원)이다. 이 가운데 과기 분야가 2조738억원(79.5%) 규모로 가장 크며 공통 분야(3236억원, 12.4%), 인문사회 분야(2107억원, 8.1%) 순으로 예산이 분배된다. 예산은 지속적으로 증가, 오는 2012년에는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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