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SK텔레콤 기획회의실.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프로젝트 참여를 놓고 중역들 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지만 결론은 참여쪽으로 가닥이 모였다.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생명인 스마트그리드는 이동통신사의 네트워크를 거쳐 이뤄진다. 당연히 이통사의 관심이 높다. SK텔레콤도 ‘5엔진’(5nGINE)이라는 5세대 미래기술과제의 하나로 스마트그리드를 채택했을 정도다. 그런 SK텔레콤이 스마트그리드에 참여하는 ‘진짜 이유’가 재미있다. SK텔레콤 고위관계자는 “이미 구축된 통신망이나 활용하자고, 단말기나 이용료 몇 푼 더 벌자고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뛰어드는 게 아니다”며 “우리가 스마트그리드로써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고객관계관리(CRM)’”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말을 압축하면 이렇다.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되면, 예컨대 참여 통신사는 각 가정의 전기차 충전시간대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세탁기를 돌리는 시간과 TV를 켜고 끄는 시간대도 자로 잰 듯 짚어낼 수 있게 된다. 이 정보를 활용해 각종 마케팅을 펼친다. 특히 이 같은 정보는 홍보와 마케팅에 엄청난 무기다. 하다 못해 세제 광고문자를 언제 전송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도 바로 알 수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스마트그리드 정보는 현재의 OK캐시백보다 수백배의 파괴력을 지닌 CRM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스마트그리드라는 새로운 서비스의 도입 하나로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의 전력사용정보는 전력계통상의 기술적 한계와 한국전력공사의 독점 판매로 인해 고스란히 사장되고 있다. 누구도 이 정보를 궁금해 하지도, 이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알아보고 이용하는 게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어서다. 이는 불합리한 전기요금 체계에 기인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스마트그리드 로드맵 추진위 법·제도분과위원장)는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는 도저히 자본주의 국가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라며 “시장 원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현행 요금체계는 전기를 아껴 쓰는 사람보다 많이 쓰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 같은 폐단이 바로 잡히고 진입장벽이 없는 전력시장이 구축되면 스마트그리드는 또 하나의 산업과 시장을 형성, 결국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초 한 에너지컨설팅 회사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향후 4년 동안 스마트그리드 초기 투자비용의 25%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160억달러를 투입한다면, 640억달러의 전체 투자를 유발해 총 28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스마트 전기계량기 등 장비 공급업체나 고객서비스 업체 등의 직접적인 일자리가 11만7700여개였고, 이들 기업에 부품 등을 공급하는 업체의 일자리가 7만9300여개였다. 이 같은 일자리 창출 효과는 올해 안으로 1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정도로 즉각적이었다. 또 많은 수는 건설노동자 등 임시직 자리였지만, 적어도 14만개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였다. IBM도 같은 날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5년간 총 500억달러를 투자하면 약 23만9000개의 새 일자리가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도 스마트그리드 구축사업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지능화된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신재생에너지원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유도할 것이라고 IBM은 덧붙였다. 물론, 3200여개의 전력회사가 존재하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기를 보내는 것이 지방도로를 타고 횡단하는 것만큼 어려운 미국의 사정을, 독점 전력판매사(한전)가 좁은 국토 여기저기에 전기를 보낼 수 있는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와 에너지 소비 절감, 일자리 창출이라는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는 아직 두각을 드러낸 곳이 없기 때문에 기술을 선점한다면 세계시장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더 많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그 시금석이 될 ‘스마트그리드 통합실증단지 선정작업’도 현재 막바지 단계다. 이달 28일 열리는 스마트그리드 총괄위원회를 거쳐 최종 후보지가 발표될 예정이나, 현재로 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시가 유력한 상황이다. 일단 바다로 고립된 섬 지역으로 각종 실증실험에 대한 데이터를 얻기 좋고 주변에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원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증단지에 여러 기관과 업체들이 자유롭게 참여, 각종 기술과 제품을 본격 시연하게 되면 제주 실증단지가 스마트그리드 기술수준과 규모 면에서 미국 볼더시를 훨씬 능가하는 본보기 도시로 세계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것이라는 게 지경부의 기대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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