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관한 소고
. 마키아벨리의 생애
마키아벨리는 1469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교육적인 분위기에서 순탄하게 자라난 마키아벨리에게 첫 번째로 큰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가 25세일 때 발생한 프랑스 샤를8세의 피렌체 침공이었다. 권력자들의 변동, 왕국의 전복, 농촌의 황폐, 도시의 살육, 잔혹한 살생, 피비린내 나는 전투양식 등 골육상잔의 가혹한 세태 속에서 인심은 나날이 흉악해지고 도의심은 땅에 떨여졌다. 샤를8세의 침공은, 외세의 침입으로 겪어야 하는 약소국의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를 마키아벨리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마키아벨리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준 것은 사보나롤라였다. 사보나롤라는 본래 피렌체의 수도원장 출신으로 1494년 샤를8세의 이탈리아 침공을 계기로 메디치가를 추방하고 인민정부를 수립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일종의 神政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러한 神政을 통해 모든 시민이 기독교 신자다운 생활의 재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철저하게 기독교 정신에 의한 사회개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또한 사보나롤라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중요시했고, 실제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로마교황청과의 불화, 피렌체 내부의 반대파 등장,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파탄나게 된다. 결국, 1498년 사보나롤라는 화형대에 오르게 되고, 시민들은 죽은 시체에 돌을 던진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두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하나는 훌륭한 도덕심(도덕적 이데올로기)과 정신력만으로는 강력한 국가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또 한가지는 민중의 지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민중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하던 바로 그날, 마키아벨리는 29세의 나이로 드디어 공직(제2정무처장)에 오르게 된다. 이때는 프로렌스공화국의 소델리니 정권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의 임무는 주로 외교분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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