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여인, 측천무후와 양귀비
당은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618년에 수(隋)의 뒤를 이어 건설한 한민족(漢民族)의 왕조로서, 907년에 후량(後梁)의 주전충(朱全忠)에 의하여 멸망되기까지 20代 290年간 계속되었다가 중간에 칙천무후(則天武后)에 의하여 한 때 주(周)라고 국호가 변하였던 일이 있다. 당은 그 전대의 수와 더불어 한민족의 가장 번성기를 이루었던 나라로, 한민족 문화의 정화인 남조문화(南朝文化)와 북방에 남아 있던 한민족에 의하여, 육성 발달된 북방호족(北方胡族)의 북조문화를 잘 융합하였고, 더욱이 서역로(西域路)를 통하여 밀려들어온 중앙아시아 지역의 서방문화를 비롯한 동서남북의 외래문화를 받아들여서 실로 세계적인 국제문화를 수립하였던 것이다. 당은 고조의 건국 후 제 2 대 태종(太宗), 제 3 대 고종(高宗)에 이르는 동안에 국위를 최절정으로 높여, 정치적으로는 판도를 확장하고 세력범위를 넓히었으며 문화면의 꽃을 피우게 한 것으로 당송(唐宋)문화로서 한민족의 문화를 대표하게끔 되었다. 이렇듯 융성하던 당의 국운은 제 6 대 현종(玄宗)말년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쇠퇴하게 되었는데, 안사의 난은 실로 당의 성쇠의 분수령이 된 것이다. 병란 이전은 정치적 대확장과 남북문화의 융합, 그리고 외래문화의 섭취 소화로써 귀족정치의 번성과 한문화의 완성을 이룩하여 한문화의 최대 번성기를 나타내었음에 반하여, 병란이후는 서민경제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귀족사회의 쇠퇴를 초래하였고, 나아가 오대(五代)시기의 분열의 소인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당의 역사 속에서 뭇남성을 손아귀에 쥐고 꼼짝도 못하게 했던 여걸이며 탁월한 제왕(帝王)을 종합시켜 놓은 여인 - 중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상 일대괴물(一大怪物)이 바로 칙천무후(則天武后)이다. 중국 역사상 단 한 사람의 여제(女帝)로 군림했었던 그녀는 말 잘하고 솜씨 또한 좋았었다.
그녀는 열네 살 때, 그 타고난 미모가 인연이 되어 태종(太宗)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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