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어머니이며 조선중기 대표적인 화가로 유명한 신사임당이 친정인 강릉을 아주 떠나 시가로 거처를 옮긴 것은 결혼한지 20년이 지나서였다. 시와 서화에서도 뛰어났지만 현모양처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결혼과 동시에 `출가외인`으로, 오로지 시가를 위해 헌신했을 법한 그의 삶의 중심이 친정에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다. 이는 조선중기까지 만해도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던 당시의 결혼풍습과 이를 둘러싼 사회상황이 가능케 했던 일이었다. 신사임당보다 60년 후에 태어난 허난설헌의 경우를 보면 상황이 많이 달라져있는 걸 알 수 있다. 규방의 고독, 구속에 대한 탄식 그리고 자신의 버려진 처지에 대한 한으로 가득 찬 일련의 시들은 그녀의 가시밭 같았던 시집살이를 그대로 증언해주고 있다. 조선후기에 정착한 시집살이 결혼제도 속에서 기혼의 여자들의 삶은 더 이상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한 여자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은 조선후기인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무렵에, 조선초기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성리학의 윤리가 널리 퍼지면서 정착된 것이었다. 그 전엔 결혼하면 남편이 아내 집에 가 살면서 자식 낳아 웬만큼 키운 다음 남편 집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결혼풍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의 여성은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남자형제와 꼭 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집간 후에도 아내의 재산권은 철저히 보장되었고, 유교사회의 핵심인 제사권도 가지고 있었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이 두 명의 인물은 우리가 익히 알고 들어왔던 과거의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은 여자가 인정받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서 천재성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헨렌켈러, 퀴리부인, 나이팅게일 등 외국에는 여성들이 매우 많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위인은 매우 적다. 그래서 이 둘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여성의 차이점을 살펴보기 전에 이 두 여인의 삶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