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가 이른바 ‘노가다’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은 이모부를 통해서였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밖에 모르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도시로 나온 이모부가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뚱아리뿐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노가다’였다. 어렸던 내게 ‘노가다’는 곧 이모부였고 그것은 그저 까맣게 탄 얼굴과 굵은 손마디가 전부였다. ‘노가다’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대단한 직업이라는 것과 그 안에도 수십가지의 직종이 있다는 기초 지식을 얻게 된 건 부끄럽게도 20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안착한 곳은 한 집 건너 ‘노가다’가 산다는 성남의 언덕꼭대기에 있는 작은 약국이었다. 10평도 채 안되는 그 곳에서 나는 종일 ‘노가다’와 그 가족들을 대했다. IMF직후라서 그랬을까.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아침부터 술 한잔 걸친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저씨들, 대낮에도 가끔씩 골목안에서 벌어지는 부부 싸움과 난투극,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꼭 약국에 들러 뇌신과 판피린을 사가는 사람. 밀린 임금을 받았다고 삼겹살을 사들고 외상값을 갚으러 오는 사람. 일감이 없다고 약국에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 매일같이 강력한 진통제와 파스를 사러오는 그들에게 나는 학교때 배운 이런저런 지식을 들먹이며 영양제와 운동을 권유하고 병원에 가지 않는 무식함을 질타했다. 하지만 강남에서는 이름조차 모른다는 뇌신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를, 판피린이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 강력한 진통제의 힘으로 버티고 짊어져야할 생활의 무게에 맨몸뚱이로 내던져진 사람들이 `노가다`였다. 하지만 ‘노가다’아저씨들이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노가다’가 아니라 ‘건설노동자’가 맞다는 사실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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