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쿠데타 주도세력 분석
. 들어가며
한국군의 창군과정에서 발전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미군사 고문관들은 경비대를 비이념적인 직업군대로 육성코자 했다. 따라서 미군정하에서는 군부가 반정치적, 친직업주의적 성향을 띠었다. 이는 당시 경비대의 리더쉽을 30세 미만의 장교들이 장악하여 정치적 성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훈련과 공비토벌에 주력함으로써 정치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 1공화국 출범 이후 이승만(李承晩)은 출신별 지역별로 형성된 한국군 내의 파벌들로 하여금 상호 반목케 하고 갈등을 조장하여 파벌간 분열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러한 이승만의 군에 대한 분리지배 방식은 군부를 정치화시키고 정치군인을 산출시키는 배경적 요인이 되었다. 사회전반의 제도화 수준이 낮은 당시 상황에서 군부 내의 파벌은 이익 추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군인들은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파벌을 형성하였으며 정치인들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위해 군내의 파벌을 교묘하게 이용하곤 했다. 또한 이승만은 군을 통한 정치자금 확보도 시도하여 그가 신임하는 정치군인들에게 정치자금의 헌납을 요구하고 육군 특무부대와 헌병총사령부를 설치하여 군통제기능뿐만 아니라 정권의 안정을 위한 민간사회부문의 통제기능도 수행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을 자극한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군대를 동원하려 한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이다.
. 부산정치파동 이후의 군부의 움직임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하여 군부의 이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군부로 하여금 군사력의 정치적 이용에 반항하는 행동주의를 낳게 하였다. 이같은 행동주의는 ① 이종찬(李鍾贊)의 경우처럼 군도 정치에 간여하지 않고 정치도 군을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 정치적 중립주의와 ② 박정희의 경우처럼 군사력을 이용하여 부패한 정치인을 몰아내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정치적 개입주의 등 두 갈래의 행동주의로 발전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당시 육군본부 작...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