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산수시와 性情의 시학
―중국과 한국의 산수화론과 시적 미학
최 동 호
. 주체적 시학의 근원을 찾아서
첫 시론집 현대시의 정신사 (1985, 열음사)를 간행한 이후 필자가 고심한 것은 어떻게 하면 주체적 시학을 정립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서양 어느 곳에서도 쉽게 그 근원을 탐색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구의 문학적, 지적 전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번역을 넘어서서 방대한 독서량이 요구되는 까닭에 그 중심을 찾기 어려웠고, 동양의 문학적 전통 또한 문화적 벽이 너무 높았다. 체계나 논리 또한 서구의 지적 전통이 훨씬 세련되어 있었지만, 필자는 서구보다는 동양의 한학 유산 속에 뿌리내린 전통에서 근원을 찾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라 판단하였다. 어느 쪽으로 나아가도 거대한 벽에 부딪혔기 때문에 필자가 택할 수 있었던 차선의 길은 실제 작품 분석을 통해 새로운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는 더욱 더 서구의 지적 유행을 추수하는 비평이 횡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방법, 그들의 감각, 그들의 용어를 원용하는 비평이 평단의 전반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때 필자는 정지용의 시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키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정지용의 장수산 과 백록담 (1985)이란 글1)을 발표하고, 이어 후기시의 하나인 비 를 분석한 바 있는데, 여기서 좀더 탐구해 들어가면, 그 시적 배경의 원천을 통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 정지용의 산수시와 은일의 정신 (1986)2)이었다. 그후 다시 필자는 포스트모던이나 해체시가 유행하던 시단에서 우리 시가 새롭게 나아갈 길을 모색하던 중 서정시와 정신주의적 극복 (≪현대시학≫, 1990. 3)을 발표하였다.
정지용 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두 가지 용어 즉 ‘산수시’와 ‘정신주의’를 문단과 학계에서 비평적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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