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동지의 생애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가난한 가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남동생 하나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그는 나이 열 세 살에 동대문 시장에서 솔, 조리장사를 하다가 빚을 갚지 못하여 가출을 한 후로 껌팔이 신문팔이 리어카 뒤밀이 우산장사 아이스 케키 장사 등으로 방황하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그러면서도 남들처럼 공부를 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은 학교하고는 국민학교 4년, 고등공민학교에 1년정도 밖에 다니지 못하고 나이 열일곱살에 평화시장 노동자가 되었다. 어린시절의 이러한 고생을 통하여 그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짓밟히고 천대받고 고통당하는 약한 사람들의 설움을 뼈저리게 체험하였고, 그래서 이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은 위해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다. 이 시절의 그의 일기를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을 그리고 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5원의 동정을 받고 양심까지도 다 내 보여야 하는 언제든지 밑지는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쓰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리라.` 라고 한 구절이 있다. 평화시장에 들어온 전태일은 그곳에서 너무나도 비참한 광경을 매일매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열두살짜리로부터 열다섯 열여섯 짜리 어린 여공들 (시다)이 햇빛 한줄기, 바람 한점 통하지 않은 캄캄한 먼지구덩이인 한마디로 돼지우리 같은 비좁은 작업장 속에 갇혀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변소에도 마음대로 못 다니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열다섯시간 이상을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휴식을 빼고 나면 하루도 쉬지 못하고 그것도 일거리가 밀릴 때는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강제로 잠 안 오는 주사를 맞아가면서 이틀씩 사흘씩 철야작업을 하는 이 가련한 여공들이 받는 임금은 한 달에 3천원도 채 못되었다. 이렇게 출발하여 평화시장에서 5-6년씩 일한 미싱사들은 거의 전부가 한창 꽃 같은 스물서넛의 나이에 얼굴에 핏기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고 안질, 신경통, 기관지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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