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의 당통의 죽음 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민중
김종은(인천대)
Ⅰ. 혁명정부의 독재와 민중운동의 쇠퇴
뷔히너의 드라마 당통의 죽음 의 실제 역사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1794년 봄은 프랑스 민중의 곤궁이 최악의 상태에 빠진 시기였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대혼란과 경제적, 사회적 위기감은 특히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파리에서 굶주림에 지친 민중이 대규모의 식량폭동을 일으켰고, 이어서 여러 지방에서도 유사한 민중봉기가 발발했다. 대부분의 가정경제는 완전히 파탄에 빠져 집단적인 기근과 곤궁이 전국을 휩쓸었다.1)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자코뱅 과격파가 주도하고 있는 혁명정부는 왕당파와 온건세력인 지롱드파를 숙청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후에 밀어닥치는 엄청난 난제(難題), 특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민중의 곤궁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냈다. 상호 협조 체제를 유지해 왔던 민중과 자코뱅 혁명정부 사이의 원만한 관계가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시점인 1794년을 기점으로 해서 와해되고, 특히 민중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던 에베르파의 숙청 이후 자코뱅 혁명정부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반면에 민중운동은 결정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때까지 혁명정부는 민중과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혁명과 대외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으나, 점차 심각해지는 민생고 때문에 민중운동이 격화되고 노골화되기 시작하면서 혁명정부는 민중의 직접적 폭력 사용을 금기시하고, 그 대신에 공권력을 통한 공포정치를 강화함으로써 모든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게 된다. 혁명정부는 최고가격제를 비롯한 강제적 규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빠리 시민들에게 충분한 물자를 공급해 줄 수 없었고, 물자부족에 물가고가 겹쳐지면서 상뀔로뜨는 더욱 더 생계에 위협을 받게되었고 임금의 상승이 물가의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다.2) 식품을 공급하는 가게 앞에 새벽 3시부터 사람들이 몰려 서로 밀치다가 난투극을 벌리곤 했고, 노동자들은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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