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연구의 바탕을 넓힌 노작 김상일
金時習은 성리학이 정치적 이념으로 작용하고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조선 전기(15세기 중후반)의 유가의 선비요 불가의 승려였다. 아니 적어도 그가 성인으로서 산 기간을 헤아려보면 승려로서 더 오랜 기간을 살았던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는 흔히 유가로서 節義를 지킨 생육신 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더 강하다. 단종을 복위하려다 죽은 사육신과 더불어 절의의 인물로 기려졌고 그런 기림의 관념이 김시습의 다른 면모를 압도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성리학적 이념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조선시대에 그는 절의의 인물로 기려져야 마땅하였다. 지금 우리가 그를 절의가 출중했던 인물로 기억하는 것도 조선시대의 이러한 평가와 기림의 관념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고 할 것이다. 한편 문학사에서 김시습은 한문소설 『金鰲新話』의 작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고 5살 때부터 시를 지어 세종의 사랑을 받고 2천여 수의 한시를 남긴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해방 후 국문학연구의 성과와 학교 교육의 영향이라 하겠다. 그리고 근래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16세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의해 성리학이 깊이 있게 연구되기 전에 김시습은 性理群書를 탐독해서 자가의 견해를 글로써 펼쳤고, 불교와 도교를 탐구해서 각기 나름대로 일정한 견해를 가진 저작물을 내서 일가를 이루었던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있다고 한다.
김시습은 이처럼 절의의 인물로 걸출한 문학가로 선구적인 사상가로서 다면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때문에 당대는 물론 이른 시기부터 그의 절의적 인물됨과 사상적 저작, 그리고 문학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김시습의 내면의 일대기를 그의 삶의 궤적과 직접적 언술(저작), 그리고 그의 생애와 언술이 놓여있던 과거 동아시아 한자문화권내의 관습 등을 고려하고 그와 그의 저작물에 대한 현대의 연구 성과까지 총합하여 꼼꼼하게 살핀 평전이 나오지 않았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심경호 교수의 『김시습 평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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