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金翅鳥) 이문열
무엇인가 빠르고 강한 빗줄기 같은 것이 스쳐간 느낌에 고죽(古竹)은 눈을 떴다. 얼마 전에 가까운 교회당의 새벽 종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어느새 아침이었다. 동쪽으로 난 장지 가득 햇살이 비쳐 드러난 문살이 그날따라 유난히 새카맸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려는데 그 작은 움직임이 방 안의 공기를 휘저은 탓일까, 엷은 묵향(墨香)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고매원(古梅園)인가, 아니, 용상봉무(龍翔鳳舞)일 것이다. 연전(年前)에 몇 번 서실을 드나든 인연을 소중히 여겨 스스로 문외제자(門外弟子)를 자처하는 박교수가 지난봄 동남아를 들러 오는 길에 사왔다는 대만산(臺灣産)의 먹이다. 그때도 이미 운필(運筆)은커녕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을 때라 고죽은 웬지 그 선물이 고맙기보다는 서글펐었다. 그래서 고지식한 박교수가,
“머리맡에 갈아 두고 흠향(歆香)이라도 하시라고……”
하며 속마음 그대로 털어놓는 것을, 예끼, 이사람, 내가 귀신인가, 흠향을 하게…… 하고 핀잔까지 주었지만, 실은 그대로 되고 말았다. 문안 오는 동호인(同好人)들이나 문하생들을 핑계로, 육십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지내 온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려고 매일 아침 머리맡에서 먹을 가는 추수(秋水)의 갸륵한 마음씨에 못지 않게 그 묵향 또한 좋았던 것이다.
묵향으로 보아 추수가 다녀간 것임에 틀림없었다. 조금 전에 그의 잠을 깨운 강한 빗줄기는 어쩌면 그 아이가 나가면서 연 장지문 사이로 새어든 햇살이었을 게다. 고죽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며시 몸을 일으켜 보았다. 마비되다시피한 반신 때문에 쉽지가 않다. 사람을 부를까 하다가 다시 마음을 돌리고 누웠다. 아침의 고요함과 평안과, 그리고 이제는 고통도 아무것도 아닌 쓸쓸함을 의례적인 문안과 군더더기 같은 보살핌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고죽은 천장의 합판무늬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이 한살이(生)에서 나는 오늘과 같은 아침을 얼마나 자주 맞았던가. 아무도 없이, 그렇다, 아무도 없이…… 몽롱한 유년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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