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러의 생애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1870년 비엔나에서 6형제 중 2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형의 그늘에 가려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들러는 어렸을 때 구루병(골화연증)을 앓아서 형제나 친구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열등했을 뿐만 아니라 4살 때 폐렴으로 거의 죽을 뻔 했으며, 길거리에서 손수레에 치여 2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들러는 이러한 신체적 열등감 때문에 엄마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아왔지만 동생들의 출생으로 그런 보호는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됐다. 아들러는 학교에서 수학성적이 매우 낮아 그 과정을 반복해야 했고, 그의 선생님이 아들러의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제조자로 일하도록 종용할 정도로 심한 열등감을 경험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아들러에게 특별한 동기부여가 되어 그가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학급에서 수학성적이 가장 높은 학생이 되었다.
1895년 아들러는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일반의가 되었다. 아들러는 한번도 프로이트 밑에서 공부해 본적이 없었으며 정신분석자가 되는데 필요한 정신분석을 결코 받지 않았다. 프로이트와의 관계 시작은 1902년, 아들러가 지역신문에서 프로이트의 꿈분석 이론을 공격하는 것을 방어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들러는 1907년 ‘기관 열등감과 정신적 보상’ (Organ inferiority and its psychical compensation)을 출판하였고, 1908년 ‘공격성 추동’에 대한 글에서 성 대신에 공격성을 일차적 추동으로 대체시켰다.
아들러는 1910년 정신분석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지만 프로이트와 계속 마찰이 일어나자 1911년 사표를 냈다. 같이 탈퇴한 몇몇의 사람들이 아들러와 합류하여 ‘자유 정신분석학회’ 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명칭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고수하려는 집단에 반대한다는 표시로 명명되었다. 1912년에 아들러는 ‘개인심리학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저널을 발간하기 시작하였으며, 프로이트식 이론의 대안적인 해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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