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되니? 얼마면 돼?” ‘가을동화’의 원빈 같은 멋진 남자가 물어본다면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콘텐츠 사업자들에게는 대답 없는 메아리에 불과한 질문이다. 콘텐츠 적정 가격 산정.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해묵은 숙제다. ◇공짜가 존재하는 상품의 적정 가격?=‘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경제 교과서에 등장하는 평범한 진리지만 콘텐츠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유료 콘텐츠와 동일한 품질의 무료 콘텐츠가 시장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P2P나 웹하드에서는 음악·영화·게임·만화·소설 등 분야를 망라한 수많은 유료 콘텐츠를 공짜나 아주 적은 비용에 구할 수 있다. 본지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10대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음악 콘텐츠 무료 이용자 326명 중 63.5%는 앞으로도 유료 구매 의사가 없다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영화·애니메이션 등 영상물 이용자의 59.4%, 게임 이용자의 77.3%, 만화 71.5%, 소프트웨어 52.4% 등 전 분야에서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유료 구매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유명 빵집 앞에 좌판을 차리고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빵을 반값에 판다면 많은 사람이 그 빵을 살 것이다. 하물며 완벽한 복제 기술로 품질도 똑같고 유통기한마저 없는 빵을 공짜로 판다면 누가 돈을 내고 빵을 사겠는가. 이처럼 우리 콘텐츠 사업자는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조금만 내려주세요=그래도 상황은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 가격만 적정하다면 콘텐츠를 돈 내고 이용하겠다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본지 조사에서도 음악은 58.6%, 게임은 53.2%, 영화는 39.1%의 사람들이 지난 6개월간 온라인에서 합법적으로 콘텐츠를 이용했다고 응답했다. 콘텐츠 유료 이용 경험자는 현행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생각했다. 5점 척도를 기준으로(높을수록 가격 부담 느낌) 음악이 3.32, 영상물이 3.09, 게임이 3.43, 만화가 3.28 등으로 대부분 현행 가격이 ‘많이 비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지도·도표·설계도·약도·모형 등 전문 콘텐츠는 ‘저렴하다’는 응답이 36.3%에 이르고 5점 척도에서도 2.77을 기록하는 등 이용자가 유료 구매 부담을 가장 적게 느꼈다. 원하는 가격을 직접 물어봤다. 음악은 역시 ‘곡당 500원 미만’이 62.5%로 가장 많았고 ‘월정액 3000원’이 22.2%로 뒤를 이었다. 영화는 ‘편당 1000원 미만’이 69.3%로 가장 많았지만 ‘편당 1000∼2000원’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27%나 됐다. 온라인에서 게임 콘텐츠를 이용할 때 드는 비용은 ‘월 기준 1만원 미만’으로 응답한 사람이 84.6%로 압도적이었으며 ‘월 기준 1만∼3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14.3%에 그쳤다. ◇습관 들이기 나름=눈에 띄는 항목은 콘텐츠 유료 이용자가 매월 치르는 금액이다. 현행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유료로 이용하는 사람은 실제로 상당한 돈을 콘텐츠 구입에 쓰고 있었다. ‘콘텐츠 유료 이용 시 월 평균 지불 금액’을 조사해보니 음악은 4374원, 영상물은 5133원, 게임은 6157원 등으로 나타났다. 음악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적정가격보다 많은 돈을 소비한 셈이고 영상물도 월 5편(편당 1000원 기준)을 소비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소설·교재·논문·강연·각본 등 교육용 콘텐츠에 지급하는 금액이 6965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는 처음 유료 콘텐츠를 구매하기까지가 힘들 뿐이지 일단 이용을 시작하면 꾸준함을 유지하는 속성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미국인이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아이팟과 PC를 연결해 음악을 업데이트하듯 사람들에게 ‘즐기는 습관’을 심어주는 데 콘텐츠 시장의 발전이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500원짜리 음악 가격 뜯어보면 내가 디지털음악을 듣기 위해 지급하는 돈은 다 어디로 갈까.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의문이다. 이에 대한 이해는 곧 적정가격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500원짜리 음악 한 곡의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를 뜯어보자. 일반적인 상품이 제조·물류·유통·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해 가격을 책정하듯 온라인 음악 콘텐츠의 가격에도 다양한 요소가 반영돼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는 역시 저작권료. 음악 콘텐츠 하나가 탄생하는 데 투입되는 ‘창작의 고통’을 높이 샀다. 개별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00원짜리 음악이 팔리면 저작권료는 270원 정도가 나간다. 먼저 음반기획사가 200원을 가져간다. 곡을 기획하고 사전투자한 부분을 인정해 가장 많은 몫을 챙긴다. 작사·작곡자에는 45원이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는 25원이 분배된다. 이처럼 전체 가격의 54%를 저작권자들이 가져가고 나면 남는 돈은 멜론·벅스·도시락 등 온라인 음악 서비스 업체가 챙긴다. 그러나 서비스 업체가 모든 돈을 가져갈 수는 없다. 온라인 결제 대행처럼 서비스를 유지해주는 관련 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면 정작 서비스 업체가 가져가는 돈은 200원 안팎이다. 통화연결음 같은 모바일 콘텐츠의 가격 체계는 좀 더 복잡하다. 저작권자와 서비스 업체인 이동통신사 외에 서비스 대행 업체와 콘텐츠 제공업체(CP)가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700원짜리 통화연결음이 판매되면 저작권료로 총 270원 정도가 나가고 이통사가 227원, CP가 133원, 서비스 대행 업체가 70원 정도를 가져가는 구조다. 주목할 부분은 음악 콘텐츠 가격 체계에서 저작권료는 건드리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발 및 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정확히 산정되는 일반 상품과 달리 음악 콘텐츠는 저작권자들의 창작 노력을 금액으로 환산해야 하므로 부르는 게 값이다. 결국 가격을 내리려면 서비스 업체의 몫을 깎아야 한다. 가격 인하 요구에 서비스 업체들이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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