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帝政(제정)이 붕괴된 후, 독일은 1919년 소위 ‘바이마르’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근대의회제를 선언하였다. 이 의회제야말로 보수적인 근대 ‘부르조아’국가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의 민주정치를 구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체제도 불과 십수년 후에는 ‘나찌’독재하에 유린, 굴복 당하였다. 그러므로 의회주의적이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패퇴와 2차 대전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교훈 이후 독일이 어떤 점을 주의하고 어떤 방향의 정치체제를 지향했는가를 아는 것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따라서 독일의 의회가 帝政시대 이후 어떻게 생성되고 ‘바이마르’당시는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가, 그리고 전쟁 후의 새 의회제에서는 의회주의에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II. 비스마르크헌법 시기 普佛전쟁(1870∼1871)의 승리로 베르사이유에서 독일제국의 성립이 선포되고 鐵과 血에 의한 비스마르크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통일된 독일제국은 헌법을 제정하였고(Ver-fassung des Deutschen Reiches, 1871. 4, 6.) 이는 비스마르크 체제하에서의 의회정치의 성격과 한계를 결정한 것이다. 이 헌법하에서의 제국의회의 지위는 결코 높은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중요시된 것은 연방참의원이었다. 형식상 제국의회가 갖는 권한은 법률의 발의권1) 및 의결권2), 예산심의권3), 결산승인권4), 조약승인권5) 등 보통 입헌주의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권한이 인정되어 있었으나, 이는 위장적 입헌주의에 불과한 헌법6)상의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거의가 제국의회의 독립적 권한이 아니라 연방참의원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약한 제국의회의 권한은 복잡한 비스마르크체제 하에서 군부나 융커를 주체로 하는 집행권에 대항하면서 동시에 정당의 발달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단지 가능성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었다.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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