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장원과 마을 중세의 영국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였다. 궁극적으로는 왕의 땅이었으나, 차례대로 봉건영주들의 지배로 내려와 결국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토지를 누구나 소유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이 나라가 로마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도 로마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큰 농장이 있었지만, 그 농장 주변의 땅들은 그 지역 주민들이 경작하고 있었다. 노만인들의 영국정복 이후 장원제도가 발달하여, 토지에 매인 사람들인 농노계급이 탄생하였으나, 그들도 자신이 경작하는 땅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의 큰 농장을 가리키는 빌라(villa)라는 말에서 촌락들의 이름이 발전하여 예를 들면 사우쓰빌(Southvile) 같은 마을이 나오고,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인들로부터 빼앗아 거주하던 지역을 나타내던 툰(tun)에서 예를 들면 Charleston, Jamestown 등과 같은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장원에는 성당과 영주의 집이 반드시 있었는데, 이 두 건물은 장원의 생활을 간단하게 요약한다. 영주의 저택은 장원의 거주자들의 현실의 괴로움과 노동을 상징하는 영주가 거주하는 곳이었고, 성당은 그에 대한 반대 세력, 즉 인권을 옹호하고 위안과 희망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성당은 장원 내의 모든 행사의 중심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 곳은 마을 사람들의 집회장소였으며, 거래시장이었고, 오락실이었으며, 심지어는 은행이나 창고의 역할까지 하였다. 주민들의 집조차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귀중품을 성당의 창고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농민들의 휴일도 성당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의 휴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일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공휴일뿐이었다. 공휴일은 크리스마스나 성모축일, 아니면 다른 성자들의 축일로서 대개는 여러 가지 축하행사가 거행되었고, 시장이 열리고, 음주와 가무가 허용되어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는데, 이러한 모든 행사가 성당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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