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원 균Ⅰ. 序論먼저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이순신과 원균의 행적을 중심으로 살펴본 후, 현재의 두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떠한지를 개관한 다음 이를 토대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려보고자 한다.Ⅱ. 이순신과 원균의 행적1.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1592년 일본은 정명가도를 구실로 조선을 침략했는데, 이순신은 미관말직만을 지내다가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에 부임하여 이후 1년 2개월여 동안 군비 확충에 힘쓰는 등 전쟁에 대비하였으며, 원균은 왜군의 침입이 임박한 임란 2개월 전에 경상우수사에 부임하였다. 임란 초기에 원균은 왜군이 침입하자 전함과 무기를 버리고 1만여 명의 수군을 해산시킨 후 전함 3척을 이끌고 왜군을 피했으며, 이 때 옥포만호 이운룡의 항의를 받고 선조의 허락을 받은 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군을 요청, 이순신의 援兵 옥포·사천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고 선조수정실록 은 전한다. 93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자, 원균은 이에 불복,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좌천되었다. 2. 정유재란과 원균의 통제사 등용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이순신은 먼저 움직이는 쪽이 불리함을 알고 격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나, 원균은 이순신이 겁을 먹고 싸우러 나가지 않는다 하였고, 조정에서는 원균의 옹호론자이 원균을 재등용할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순신에 대한 조정의 불신이 커져만 가던 중, 소서행장의 반간계 사건이 발생하는데, 가등청정을 잡아들이지 않은 것을 기화로 97년 조정은 이순신을 파직하여 서울로 압송하고, 원균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싸울 것을 주장하던 원균은 이순신이 싸우지 않았던 상황을 간파하고 싸울 형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왜군은 이순신이 파면되어 수군의 지휘권이 바뀐 틈을 타서 육지와 바다에서 총공격을 해 왔다(정유재란). 조정에서는 원균의 장계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강력히 독촉한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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