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산업은 다른 첨단업종에 비해서 수도권 집중이 비교적 덜하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 아닌데다 지자체들의 로봇산업 지원책 덕분에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이 반영된 로봇클러스터가 구축되고 있다. 지방 로봇클러스터의 현황과 육성방안을 살펴본다.
로봇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각광받으면서 주요 지자체마다 로봇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로봇제조업체·부품업체·연구기관 등이 밀집한 로봇 클러스터가 지방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 로봇클러스터의 효시는 부천이다. 지난 2004년 부천시는 약대동 테크노파크 401동에 로봇기업과 연구기관·조합을 선별해서 입주시켰다. 아파트형 공장 한 동을 로봇업체만 끌어들여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 부천시의 발상은 당시로선 매우 참신했다. 또 1층에는 볼거리를 위해서 로봇전시장을 꾸미고 로보파크란 근사한 이름을 내걸었다. 바로 이웃한 203동에는 모터·센서 등 자동화관련 부품업체와 연구기관을 끌어들였다. 이렇다 할 정부지원도 없이 일개 기초자치단체가 매우 모범적인 로봇클러스터를 구축한 셈이었다. 비록 지능형 로봇이 초창기인 까닭에 로보파크의 경제적 효과는 예상보다 못했지만 로봇전시장과 운영현황을 둘러본 다른 지자체 관계자들은 무릎을 쳤다. 자칫 차세대 로봇산업의 주도권을 조그만 부천에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때 맞춰 정부가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 각 지자체에 대한 로봇지원예산을 대폭 늘리자 안산과 인천·대전·포항 등에도 유사한 로봇 클러스터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지방마다 별 특색도 없이 엇비슷한 로봇연구만 한다면서 차라리 특정지역에 로봇산업을 몰아줘서 중복투자를 피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차세대 로봇산업의 영역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자연스럽게 로봇클러스터를 키워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더 실리는 상황이다. ◇지역별 로봇클러스터 현황=경남은 조선·기계·항공 등 로봇이 밀집한 산업환경 덕분에 로봇밸리란 명성에 걸맞은 산업용 로봇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지역 내 대기업이 주도해온 로봇연구를 조정하기 위해 창원의 경남거점로봇센터가 활동하고 있다. 대전권은 KAIST 등 다수의 국책연구소가 몰려서 고급인력과 원천기술이 풍부한 장점을 이용해서 군사용·서비스용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R&D 역량은 뛰어나지만 기술을 상용화할 대형 로봇업체가 부재한 것이 대전 로봇클러스터의 흠이다. 안산은 로봇종합지원센터와 지능로봇사업단을 주축으로 로봇산업 기반의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시화·안산공단을 배후에 둔 환경 덕택에 기업체에 대한 기술지원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광주는 가전로봇의 메카를 목표로 로봇클러스터 구축이 한창이다. 광주는 삼성전자가 국내 최대의 생활가전 제조라인을 운영하고 있어 가전로봇의 최적지로 평가되나 실제로 로봇산업기반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전남은 지역특성에 맞춰 농업로봇의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예산부족으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해안과 인접한 포항에서는 포항공대가 해양로봇과 포스코가 요구하는 대형철재 운반로봇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첨단 로봇부품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문서비스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인천도 로보랜드 유치전을 계기로 종합적인 로봇산업 육성책을 발표하면서 로봇전문업체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부천은 로봇클러스터를 가장 앞서 구축했으나 덩치 큰 광역지자체들의 견제로 애써 유치한 로봇업체들의 이탈마저 우려할 상황에 몰렸다. ◇정부의 고민=지방 로봇클러스터의 급격한 확산은 사실 정부의 로봇지원책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정부 입장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제철·정유·반도체 등과 같은 대규모 장치산업을 골고루 나눠줄 수 없는 노릇이다. 반면에 로봇산업은 큰돈 들이지 않고 지역 유권자들에게 생색을 내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어쨌거나 연구소 건물을 새로 짓고 로봇기업을 입주시키면 지역 내 로봇산업의 기본토대는 대충 마련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봇클러스터의 운영상 문제점도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우선 쓸 만한 로봇업체와 연구기관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처(로봇클러스터)가 늘다보니 자기 지역에 기업체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비슷한 주제의 로봇연구사업이 지역별로 중복투자되는 문제점도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른 나라보다 앞서 지능형 로봇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성장통이란 해석도 있다. 이호길 로봇종합지원센터장은 “지역별로 특화된 로봇산업을 육성하려고 해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중복될 수밖에 없다”며 “지능형 로봇은 다품종 소량생산 품목이기 지역별로 산업거점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봇산업 주무부처인 산자부도 지방 로봇클러스터의 성장을 촉진할 협력체제를 모색 중이지만 지역산업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는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 올 초부터 안산·대전·포항·창원의 로봇거점센터이 장비공유를 위한 협의체를 만들게 한 것이 그나마 의미있는 성과다. 심학봉 산자부 로봇팀장은 “이미 로봇클러스터가 곳곳에 산재한 상황에서 억지로 한 곳에 모으기란 불가능하다”면서 “로봇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지역별로 특화된 로봇산업의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자부는 다음달 로보랜드 예비 후보지를 선정한 직후에 탈락한 지자체들을 의식해 지방로봇산업 지원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훗날 로보랜드는 놓쳤지만 지역경제에 특화된 로봇산업 기반을 갖게 되서 더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바란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인터뷰-염영일 포항지능로봇연구소장 “지역별로 로봇산업을 특화시킨다고 정부가 강제적으로 지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지역마다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면 제 밥그릇은 자기가 알아서 찾겠죠.” 염영일 포항지능로봇연구소장은 어떤 로봇제품을 만들든지 근본기술은 동일하며 지역마다 로봇산업기반(연구·기업·수요처)을 다지는 게 로봇특성화보다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순창 고추장이 유명한 건 고추를 비롯한 핵심재료의 품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로봇도 산업기반이 탄탄하면 주변 지역의 자동화 수요가 모여들기 마련이에요.” 염영일 소장은 포항의 로봇산업은 포스텍·포철이 각각 로봇연구와 로봇수요의 핵심 축을 떠맡은 덕분에 여타 지역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자랑한다. 오는 7일 정식개관하는 포항지능로봇연구소의 최신설비와 로봇전시관을 설치한 것도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강조했다. “바다에 인접한 포항의 특성을 살려 연구동 지하 1층에는 수심 10m의 해양로봇개발용 수조를 설치했습니다. 또 지역 주민이 로봇기술을 이해하도록 연구동 1층 공간은 로봇전시관으로 꾸몄습니다.” 염영일 소장은 최근 포철의 요구로 수작업에 의존하는 냉연코일을 포장하는 철강로봇을 개발하는 사례를 들면서 포항 로봇클러스터는 이미 정부지원이 지역경제의 자동화수요를 창출하는 선순환 단계로 들어섰다고 설명한다. 그는 “다른 지역의 로봇클러스터도 좋은 결실을 보도록 정부가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면서 “지능형 로봇의 미래는 서울보다 지방에 의존도가 더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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