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생애와 업적 생애 고려 말기 신흥 사대부 계층을 대표... (참고 : 1page는 표지 입니다.)
본문일부/목차
이성계의 생애와 업적 생애 고려 말기 신흥 사대부 계층을 대표한 무인이다. 고구려를 새운 주몽이 활의 명수였듯이 이성계도 활의 명수여서 일찍이 무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장군으로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빼앗았고, 홍건적 10만 명이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도 용감히 맞서 싸웠다. 그 후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원나라 장군 나하추를 무찔렀으며, 1378년부터 1380년까지 지리산과 해주·황산 등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잦은 싸움으로 병사들이 지쳐서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명나라가 철령 부근에 군사 보급 기지를 만든다는 소문이 나돌자 고려 우왕은 이성계에게 요동 정벌을 명령하였다. 이성계는 우군통도사가 되어 10만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 위화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위화도 진격 도중 군사들을 돌려 개경으로 진격하면서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후 창왕을 내세웠다. 다음 해에 다시 창왕을 몰아내고 고려 마지막 임금이 된 공양왕을 임금의 자리에 앉혔으며 정몽주 등 고려의 충신들을 제거하고 공양왕도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이로써 고구려의 기상을 잇고자 일어난 고려 왕조는 475년 만에 영영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공양왕을 폐하고 왕위에 오름. 사대주의 정책, 숭유정책, 농본정책을 건국이념으로 삼음) 살던 시대 이성계는 그가 폐위시킨 공민왕의 신하였다. 공민왕 시대 때에는 원나라가 쇠퇴해지자 원나라 배척운동을 일으키고, 1352년(공민왕 1) 변발(폴髮) ·호복(胡服) 등의 몽골풍을 폐지하였다. 1356년 몽골 연호 ·관제를 폐지하여 문종 때의 제도로 복귀하는 한편, 내정을 간섭한 정동행중서성이 문소(征東行中書省理問所) 를 폐지하였다. 이어 원나라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고 권세를 부린 기철(奇轍) 일파를 숙청하고, 100년 간 존속한 쌍성총관부를 쳐서 폐지하는 등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였다....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