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형 로봇이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기능성 못지않게 고객과의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을 고려한 디자인이 필수적이다. 청소로봇의 대화능력이 아무리 향상돼도 사람이란 진공청소기보다는 인간을 닮은 기계장치와 대화를 시도하기 마련이다. 디자인은 로봇을 로봇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과 일본의 로봇 디자인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사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휴보와 아시모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두 종의 인간형 로봇은 각각 한일 양국의 로봇산업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이자 로봇기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일본을 대표하는 아시모의 외형을 살펴보자. 아시모의 키는 초등학교 1학년생의 평균신장인 120㎝에 맞췄다. 몸통에 비해 머리를 크게 설계했기 때문에 어린 소년의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팔과 다리의 세밀한 터치까지 흠잡을데 없이 로봇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 세계적 자동차기업 혼다가 자존심을 걸고 15년간 무려 300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첨단로봇의 상징인 만큼 세련된 디자인은 당연하다. 아시모의 외관은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담당했고 올초 CES 행사에서 신장 130㎝로 커진 신형 버전이 나왔다. 한국의 대표선수 휴보도 신장은 구형 아시모와 똑같다. 한눈에 봐도 휴보의 디자인은 잘 다듬어진 곡선보다는 소박한(?) 터치가 느껴진다. 태권도복을 입은 소년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지만 머리와 몸통의 비례를 보면 영락없이 건장한 성인 태권도 사범을 연상시킨다. 오준호 KAIST 교수는 휴보의 디자인 개발비는 당시 박사과정을 밟던 김원섭 연구원에게 3000만원을 지급한게 전부라고 고백한다. 또 목업을 만드는데 연구비 9000만원을 들여서 휴보의 외형을 완성했다. 아시모 개발에 투입된 대기업의 디자인 역량과 비교할 때 학생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완성된 휴보의 디자인 수준은 오히려 대견스럽다는 평가다. 주먹구구식의 디자인관행은 우리나라의 여타 지능형 로봇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로봇산업 격차는 로봇디자인에 대한 낮은 인식과 투자부족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 로봇디자인에 투자를 하려 해도 전문디자이너의 부족현상은 국내 지능형 로봇산업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로봇디자인에 투자 늘려야=국내 로봇업계가 디자인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한 역사는 매우 짧다. 그동안 산업용 로봇시장에서 핵심은 기술적 문제였지 디자인은 부차적 사안이었다. 우선은 제대로 움직이는 로봇기구를 만드는게 급했고 디자인은 껍질을 만들어 붙이는 후공정쯤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연간 수백억원씩 집행되는 로봇 R&D사업에서도 디자인 개발에 투입되는 예산은 극히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독창적이고 뛰어난 디자인의 로봇제품이 튀어나오기를 기대하기란 무리다.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이 지능형 로봇사업에 뛰어들면 로봇 디자인에 투자는 늘겠지만 인력양성문제가 남아있다. 우리나라에는 로봇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산업디자이너가 거의 없다. 휴대폰, 가전제품만 다루던 디자이너가 바퀴 달린 로봇을 설계하기란 매우 어렵다. 산업디자인의 관점에서 기동성을 지닌 로봇은 자동차 디자인에 버금가는 난이도를 갖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축적된 산업 디자인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이 부상하는 로봇업계의 디자인 수요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세계적 산업디자인 학교인 캘리포니아의 아트센터(Art Center College of Design)는 올들어 로봇디자인을 정식 과목으로 포함시켰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로봇전문을 표방하는 디자인 회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로봇디자인은 이미 SF영화의 소품제작이 아니라 산업디자인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는 상황이다. 반면 국내 로봇회사들은 한결같이 로봇을 개발하려 해도 디자인을 믿고 맡길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로봇업체들은 외부 용역 대신에 자체 디자인 인력을 충원해서 정면돌파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김경근 마이크로로봇 사장은 “외부 디자인 회사에 로봇디자인을 맡겨도 만족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서 “청소로봇 본체와 박스, 매뉴얼의 통합 디자인을 위해 자체 디자이너를 5명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로봇디자인은 외형이 전부가 아냐=흔히 디자인이란 제품의 외형을 꾸미는 작업이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로봇디자인은 멋진 외형을 만드는 것 외에 로봇의 몸동작과 사운드, 시나리오, 컨텐츠 구성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로봇이 인간과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매력적인 외관은 물론 몸동작과 음성, 콘텐츠의 전달순서까지 세심하게 조율하는 미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이러한 입체적 로봇디자인을 위해서는 디자인 영역을 포함해 공학, 심리학, 사회학 등과의 협업연구가 진행되야 한다는 주장이다. 로봇디자인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로봇개발 초기단계부터 디자이너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디자이너가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로봇컨셉을 구현하려며 각 분야의 엔지니어와 대등한 자격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고상룡 디케이디자인 사장은 “국내 로봇디자인이 세계수준에 도달하려면 디자인을 경시하는 로봇개발과정부터 고쳐야 한다”면서 “로봇제조사와 디자인 협업을 위해 로봇산업연구조합의 3개 회원사를 선정해 제품디자인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래의 로봇디자인 수요와 다른 학문과 협업연구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미술대학에 로봇디자인 커리큘럼을 만들거나 로봇디자인 전문교육기관을 신설할 때가 왔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분위기 변화에 따라 KAIST는 그동안 디지털미디어혁신센터(DIC)에서 담당해온 로봇디자인 연구사업을 별도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인터뷰-김명석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로봇디자인은 움직이는 기계에 껍질만 씌우는게 아닙니다. 로봇을 로봇답게 만드는 모든 과정이 로봇디자인에 포함됩니다.” 김명석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미개척분야인 국내 로봇디자인의 이론적 체계를 만들고 로봇디자이너를 배출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가 이끄는 디지털미디어디자인혁신센터(DIC)는 지능형 로봇 티로와 정통부의 URC사업 등 다양한 로봇디자인 개발을 지원했고 연간 2∼3명의 로봇디자인 석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김 교수는 “로봇디자인은 정지된 외형 못지않게 움직임을 표현하는 행동디자인, 콘텐츠 등도 중요하다”면서 “배우가 미묘한 몸동작으로 연기를 하듯이 로봇도 어떻게 움직여야 소비자 만족도를 높일지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로봇디자인이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기능성 외에 사람이 움직이는 로봇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심리적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 “현재 일본이 로봇디자인에서 가장 앞섰지만 한국이 로봇전문 디자인 연구센터를 만들고 창의적 교육을 강화한다면 머지않아 국제수준에 오르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휴대폰, 가전 디자인에서 일본을 따라잡았지 않습니까?” 김 교수는 상업적 의미의 로봇디자인 역사는 이제 겨우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도 노력여하에 따라 한국특유의 로봇디자인풍을 만들어 ‘로봇한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로봇은 로봇다워야 한다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로봇이 마네킹처럼 어설프게 사람외형만 흉내내면 고객들이 혐오하는 역효과가 납니다. 로봇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돕는 도구임을 디자인 컨셉에서도 확연히 나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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