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한달 전 야후의 부진에 책임을 지고 CEO직을 사임한 테리 시멜 회장은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한동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지수에 포함된 미국 대표 기업들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테리 시멜이 작년에 받은 보수는 스톡옵션과 성과급 등을 포함해 총 7170만달러(657억4000만원)였다. 미국 최고 몸값을 받고도 걸맞은 실적을 못냈으니 CEO 자리를 내놓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테리 시멜 회장의 작년 공식 연봉이 1달러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CEO가 연봉으로 단돈 1달러만을 받겠다는 것은 사실상 연봉을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시멜 회장은 야후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1달러 연봉를 자청했으나 정작 야후가 벌어들인 한해 수익에서 가장 많은 돈을 자기 몫으로 챙겼다는 게 주주들의 화를 돋운 것이다. ◇테리 시멜 무늬만 연봉 1달러=연봉 1달러는 한때 적자 상태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CEO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액수였다. 1978년 부도 직전에 있던 크라이슬러의 리 아이카코카 회장이 처음 1달러 연봉을 받겠다고 했을 때 미국 사회는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리더십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이후 제2, 제3의 아이아코카가 나올수록 그 효과는 반감됐고 시멜 회장처럼 ‘무늬만 1달러 연봉’을 받은 CEO들 때문에 의미도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성한 노동의 대가이자 당연한 권리인 연봉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대단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CEO들이 막대한 연봉을 내던지면서까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3월 구글의 에릭 슈미트 CEO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3인방은 보너스나 스톡옵션도 없이 순수하게 연봉만 1달러를 받겠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구글에서 적자나 구조조정이 1달러 연봉의 이유가 됐을 리 만무하다. 이들 세 사람은 주주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당신(주주)들이 번 만큼만 나도 가져가겠다.” 구글 3인방은 경영진인 동시에 회사의 대주주다. 구글이 좋은 실적을 올릴수록 이들 개인 재산도 비례해 불어나는 것이다. 1달러 연봉은 주주들에게 고용된 경영자의 본분을 지키는 형식에 불과하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회장도 1997년 CEO로 복귀한 후 10년째 연봉을 1달러만 받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책임경영에 혼신을 다하겠다는 증표였다. 또 잡스 역시 구글 창업자처럼 애플 주식 540여만주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애플은 지난해 아이팟 매출 호조로 주가가 많이 올랐고 올해 역시 아이폰 때문에 상한가 행진을 기록할 전망이다. 덕분에 잡스는 거액의 스톡옵션 때문에 논란이 되긴 했지만 10년째 1달러만 받고도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부자 순위에서 57억달러 재산으로 132위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 분위기 쇄신…고통분담 앞장 의지 표현=그런가하면 지난 2001년 미 인터넷기업 1세대인 미국 네트워킹 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존 체임버스 회장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연봉을 1달러로 자진 삭감해 직원들의 민심을 얻었다. IT기업은 아니지만 가장 최근 1달러 CEO 대열에 합류한,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식품업체 홀푸드의 존 매키 CEO는 “돈 때문이 아니라 이토록 대단한 업체의 CEO를 맡고 있다는 자부심과 홀푸드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정 때문에 일한다”고 한 발언으로 회사와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드높였다. CEO들의 연봉 1달러 선언은 무한책임을 갖고 회사 경영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일수도, 주가하락 등으로 고전하는 회사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고통분담에 앞장선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어려워진 회사를 다시 일으키는 제2의 창업주로 스스로를 이미지 메이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간에 억대 연봉을 과감히 포기하고 회사를 키우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CEO란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도 스톡옵션을 행사한 금액 절반을 사회에 환원한 모 은행장의 사례가 있듯이 CEO의 멋진 쇼맨십은 때로 자신뿐 아니라 회사를 살리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etnws.co.kr
◆세계 최고 연봉 미국 CEO들 1달러 CEO들도 있지만 대다수 미국 CEO들의 연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500대 기업 CEO가 지난해 받은 평균 연봉은 830만달러(76억1000만원). 오정일 경북대 교수·임형록 산업연구원 박사가 공동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100대 기업 CEO 평균 연봉은 5억3840만원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량기업 도요타 자동차도 CEO 연봉이 10억원을 넘지 않아 미국과 대조를 이룬다. 또 미 의회 조사국(CRS) 조사 결과 지난해 CEO와 말단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무려 179배로 94년 조사 때의 90배보다 더 차이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CEO들은 왜 그렇게 돈을 많이 받을까. 이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과거보다 최고경영자 한사람에게 책임이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자연히 CEO의 몸값이 올라갔다고 분석한다. 또 분기별로 실적에 따라 CEO 자질을 평가받고 기업간 M&A가 빈번해지면서 CEO의 교체주기가 짧아지자 이를 감안해 연봉에 거품이 생겼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테리 시멜 야후 회장에 이어 지난해 미국 최고 연봉 CEO 2위는 5950만달러를 받은 XTO에너지의 밥 심슨 CEO가 차지했으며 3위는 옥시덴탈 페트롤리엄의 레이 이라니 CEO(5280만달러)였다. 톱10에 포함된 CEO는 주로 정유 회사와 투자은행 CEO로 이들의 보수는 각각 3000만달러가 넘었다. IT기업 CEO의 연봉도 비교적 높다. 포천이 집계한 미국 CEO 연봉 순위(2005년 기준)에서는 스콧 맥그리거 브로드컴 CEO(5740만달러)와 테리 시멜 야후 전 CEO(5680만달러), 래리 앨리슨 오라클 CEO(5230만달러) 3명이 10위권에 포함됐다. 여성 CEO 중에도 맥 휘트먼 e베이 CEO, 패트리샤 루소 알카텔루슨트 CEO, 칼리 피오리나 전 HP CEO 등이 상위권에 속한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연봉 1달러의 효시..아이아코카 회장 연봉 1달러 CEO의 역사는 리 아이아코카 크라이슬러 회장이 열었다. 아이아코카는 1978년 자동차 업계가 장기불황과 고유가로 휘청거릴 때 파산 일보 직전의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에 구원투수로 영입된 인물. 당시 크라이슬러는 35억달러 적자와 누적된 재고에 시달렸고 상품 경쟁력은 형편 없었다. 거기에 무능하고 부패한 중역들과 끊이지 않는 노사분규 등으로 곪을대로 곪아 있었다. 경쟁업체 포드에서 옮겨와 CEO가 된 아이아코카는 곧바로 계열사 중 21개를 정리하면서 35명의 부사장 중 33명을 해고하고 종업원 18만명을 13만명으로 줄였다. 남은 종업원들의 연봉 5%를 삭감하면서 고통분담 차원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자신도 연봉 1달러만 받겠다는 선언이었다. 솔선수범하는 CEO의 모습에 직원들은 다시 희망을 갖고 뛰기 시작했고 여론도 크라이슬러에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급기야 정부는 크라이슬러에 2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에 이른다. 이 돈을 바탕으로 아이아코카는 신차 개발에 성공해 흑자로 전환했고 결국 상환일정을 7년이나 앞당겨1983년 모든 부채를 청산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위기관리 사례로 꼽히는 아이아코카의 연봉 1달러 리더십이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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