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고춤 강강술래
종 목 : 중요무형문화재 8호
명 칭 : 강강술래 (강강술래)
분 류 : 놀이와의식
지 정 일 : 1966.02.15
소 재 지 : 전남전역
관 리 자 : 강강술래보존회
유래>
강강술래가 어느 때 어떻게 하여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하게 밝혀볼 수 없고 다만, 이 놀이가 꽤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오늘날에 보이는 강강술래의 시원(始原)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 마한(馬韓)의 습속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5월에 씨를 다 뿌리고 귀신을 제(祭)한다. 때를 지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신다. 밤낮 쉬지 않고 수십 명이 함께 춤을 추는데, 다 같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가락에 맞추며 손발을 맞추어 몸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땅을 밟는다. 이와 같이 탁무(鐸舞)와 비슷한 춤을 10월 농사를 끝낸 후에 또 다시 춘다.
위와 같이 마한의 습속에는 파종을 끝낸 5월과 추수를 끝낸 10월에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셔가며 밤낮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며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원무(圓舞)의 형식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에 손을 잡고 한마음으로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뛰노는 이 놀이가 민중의 축제에서 크게 놀아졌음은, 그 놀이의 형식이나 뜻으로 보아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원무 형식에 곁들여 불러졌을 노래 도한 오랜 연유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강강술래는 또는 강강수월래 등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강강술래 노래로 미루어, 강강술래놀이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추측하는 것이다. 훨씬 후, 이것이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전술(戰術)과 결부되어 그 뜻이나 내용에 대한 폭이 넓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과 강강술래를 관련 지어 전해 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명량(鳴梁) 바다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과 12척밖에 없었고, 이에 비해 왜선(倭船)은 3백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왜적과 맞서기 어렵게 되자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의 대군이 산 봉우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병술(擬兵術)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아낙네들이 산봉우리를 돌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비롯이라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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