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일제하의 지식인은 한말의 척사위정론자들로부터 개화계 인사를 거쳐 신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이들 중에는 전통적인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외국의 최고학부에서 공부하며 학위를 받은 선진적인 지식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와 민족의 현실을 보면서 자기 사회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민족 자주화를 위한 사상을 정립하고 행동방식을 선도하기에 노력했다. 한말에는 사회진화론을 수용하고 애국계몽운동의 계획을 세우고 그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일제 하에는 민족주의사상과 민주공화정 이론을 정립하며 실천하기에 앞장섰다. 그들은 또 개인의 인권과 사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수용하여 우리의 틀에 맞는 실천적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다. 또, 지식인들 중에는 국학연구를 심화시킴으로써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항거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민족정신을 연구하고 보존함으로 당시 벽에 부딪친 암울한 식민지적 현실을 타개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한국의 고전 연구를 통해 민족문화와 민족사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여 국학 열풍을 조성하려고 했으며, 같은 시기 민족말살통치하에서 우리의 민족주의가 어문민족주의, 역사민족주의 및 종교민족주의로 나타났던 것은 이러한 국학연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일련의 움직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말 일제강점기의 지식인들이 밝은 면만 보인 것은 아니다. 한말 사회개혁을 주저하는 지식인이 많이 있었고 더구나 외세의 침략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즉 미래를 내다보는 지성을 가지지 못한 지식인들이 있었다. 식민지하에 들어서서는 민족문제를 두고 일제와 타협하거나 친일행각을 벌인 경우도 많았다. 이들 일제와의 타협론자들 중에는 민족주의 우파에 속한 지식인들이나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거기에 비해 사회주의계 지식인들 중에는, 꼭 민족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신념에 충실하기 위하여, 일제말기까지 신념적 정절을 지키며 지배자들과 투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제 말기의 국내의 사상범들 중에는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과 사회주의자들 밖에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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