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의 국민적 정체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이러한 물음은 비로소 최근에야 제기되었다. 주지하다시피 E. P. Thompson의 불후의 대작이 출판된 이래 영국 사학계에서 중요한 것은 '계급'이었지 '국민' 혹은 '민족'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연구자들도 영국을 다루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민족 운동과 같은 것들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일찍이 Hans Kohn은 17세기 영국 혁명이 영국인들의 민족주의의 시발점이라고 해석하였다. 영국인들은 이를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원리를 수립함으로써 하나의 국민의식이 전체 인민을 하나로 만드는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Liah Greenfeld는 민족주의를 민주주의의 모태로 보면서, 그것은 16세기 영국에서 싹텄다고 주장하였다. 16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지배 엘리트로서 인민을 자신들의 아래에 있는 피지배민으로서 보지 않고 자신들과 인민들이 하나의 국민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의 귀족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러한 발상을 가능케 했던 것은 바로 종교개혁이었다. 그것은 영국인 모두가 신에 의해 선택된 백성들이라는 의식을 심어 줌으로써 영국민 전체를 귀족으로 만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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