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의 간섭과 사대부의 성장
원 간섭하의 개혁과 반발
1259년 몽고와의 전쟁을 끝내고 1270년 무신정권이 타도되고 왕정이 회복됨으로써 고려사회는 차츰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고려왕[원종]은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을 세자인 충렬왕의 비(妃)로 맞이하였는데, 그후에도 역대 국왕은 이러한 관례를 따랐다. 그리하여 두 나라 왕실은 혈연적으로 굳게 맺어지고, 고려세자는 북경에 머물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원제국의 부마[사위]가 된 고려왕은 원에 대해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반대로 원의 간섭을 받기도 쉬웠다. 원은 고려왕에 관련된 칭호를 격하시키고, 고려의 정치조직을 재편하였다. 왕의 묘호는 祖와 宗 대신에 ‘王’자를 쓰게하고, 묘호 위에는 반드시 ‘忠’자를 붙이게 하였다. 또한, 짐(朕)을 고(孤)로. 폐하(陛下)는 전하(殿下)로, 선지(宣旨)는 왕지(王旨)로 낮추었다. 이밖에 삼성(三省)을 통합하여 첨의부(僉議府)로, 중추원(中樞院)을 밀직사(密直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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