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보조해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지능형 로봇이 속속 상용화되고 있다. 로봇을 교사의 대역으로 교육현장에 투입하는 사례는 한국이 세계최초다. 이러한 형태의 교육 로봇은 지난 10년간 국내 교육시장의 지형을 바꿔놓은 e러닝의 새로운 형태로서 잠재력을 막 드러낸 상황이다.
교육용 로봇시장은 크게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어린이들이 로봇을 직접 조립하면서 과학원리를 깨우치게 돕는 학습교재(로봇키트)가 있다. 학생들이 로봇의 구조와 작동방식을 이해하려면 로봇을 스스로 만들고 조정해 보는 것이 최고의 교육방식이다. 요즘 로봇열풍을 타고 초중고의 로봇교재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교육용 로봇매출과 학원시장은 짭짤한 수익을 누리고 있다. 두번째는 어린이에게 학습콘텐츠를 전달하는 교육도구로서 로봇시장인데 최근 지능형 로봇의 킬러앱으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로봇을 교육매체의 관점에서 상용화시킨 것은 우리나라가 원조다. 로봇왕국 일본도 보수적인 교육계 풍토 때문에 교사로봇의 도입은 아직 시도조차 못한 형편이다.
지난 2002년 유진로봇의 신경철 사장은 새로운 로봇아이템을 고민하던 차에 선생님을 대신하는 교육용 로봇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다. “한창 호기심이 많은 유치원생, 초등학생에게 선생님 대신 로봇을 통해서 교육과정을 제공한다면 새로운 로봇시장이 형성되지 않을까.” 얼핏 유치한 발상이었지만 한국의 거대한 사교육 시장을 고려할 때 로봇이 수업을 진행한다는 만화적 상상력은 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듬해 유진로봇은 세계최초의 `로봇교사’인 아이로비를 선보였다. 하지만 재미와 교육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교사로봇의 상용화는 예상보다 험난한 길을 겪어야 했다. 어린이들은 처음에 교사로봇의 외형과 기능에 큰 호기심을 보이다가 몇일이 지나자 금방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천진한 아이들 눈에도 로봇이 제공하는 몇가지 동요와 영어배우기 등은 여타 매체(비디오, PC)에 비해 턱없이 빈약했던 것이다. 로봇이 교육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외형보다 양질의 콘텐츠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로봇업체들은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했다. 로봇업체들은 로봇 하드웨어 개발에만 집중하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는 교육전문업체에 맞기는 방식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금성출판사, 한국몬테소리 등은 어린이 교육사업의 외연을 넓히는 차원에서 로봇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로봇과 콘텐츠를 결합해서 취학전 아동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만들 경우 교육도서, 비디오, 웹서비스에 이어 새로운 미디어시장을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교육용 로봇의 가능성은 올해 초까지 정통부가 진행한 URC로봇 1차 시범사업에서도 검증이 됐다. 교육부 추천으로 선정된 8개 유치원에서 교사로봇을 운용해 본 결과 예전보다 한결 향상된 교육 및 오락 콘텐츠 덕분에 어린이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이제 교육시장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가격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남았다. 쓸만한 교사로봇의 소비자 가격은 대부분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왠만큼 경제력을 갖춘 가정에서도 자녀교육을 위해 선뜻 로봇을 사주기가 부담스런 수준이다. 따라서 초기 교육용 로봇 시장은 가정보다는 유치원, 학원 등 B2B쪽에서 먼저 열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수십명의 어린이들을 관리하는 교육기관에서 교사로봇을 여러대 구매해도 가격부담이 한결 낮을 뿐 아니라 효용가치는 높아진다. 또한 로봇교육을 커리큘럼에 포함시켜 체계적으로 운용, 관리하는데도 훨씬 유리하다. 현재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숫자는 약 2만8000여곳. 구매력이 높은 상위 30% 수요만 공략해도 1만대에 가까운 교육용 로봇수요가 생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한다. 이같은 전망에 따라 한국몬테소리판매는 로봇용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사로봇을 유치원에 직접 판매하는 등 로봇사업에 팔을 걷고 나섰다. 세종로봇도 자체 개발한 교사로봇 ‘리베로’에 에이플러스 과학나라의 콘텐츠를 내장해 시장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한국몬테소리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 학습교재는 국가별 언어장벽이 크지 않기 때문에 국내시장에서 로봇기반의 교육모델이 성공할 경우 곧바로 전세계에 수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봇과 콘텐츠를 결합시킨 한국형 로봇교육이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보이게 된 것이다. 로봇기반의 학습모델은 사교육뿐만 아니라 공교육분야에도 급속히 파고 들고 있다. 한울로보틱스가 개발한 교사도우미 로봇 ‘티로’는 5월부터 대전, 충남, 충북의 일부 초등학교에 배치되어 실험학습에 들어간다. 티로는 학생들에게 콘텐츠를 직접 전달하기 보다는 교사의 노동강도를 줄이는 도우미 역할을 위해 개발됐다. 티로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출석체크와 수업일정, 교과서 읽기, 과제물과 성적관리, 교재검색 등 귀찮고 힘든 업무를 대신하게 된다. 교사와 로봇, 학생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끌고 가는 독특한 교육모델이 등장한 셈이다. 김병수 한울로보틱스 사장은 “한국 초등학교는 교사 1인당 학생수가 평균 40명으로 미국, 유럽에 비해 두배나 많고 가르칠 과목수도 지나치게 복잡하다”면서 “교사 도우미 로봇이 투입되면 수업 중 노동강도를 20∼30%까지 줄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일선 교육 관계자들은 로봇이 교실에 나타나는 상황에 대하여 찬반 양분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우선 로봇이 어떻게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냐는 식의 오해와 정서적 반감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젊은 교사들은 로봇이 부수적인 잡일을 경감시키고 전인교육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로봇기반의 교육자동화(Education Automation)에 찬성하겠다는 분위기다. 청주교육대학의 김동호 교수는 “교육로봇의 등장은 지난 10년간 e러닝이 촉발시킨 교육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의 교과서가 웹문서, 플래시, UCC 동영상으로 진화해 왔듯이 로봇도 교육매체로 변모하는게 당연하지 않냐고 오히려 묻는다. 지금 한국에서는 세계 교육사에 유례가 없는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자식교육을 위해 그 어떤 도전과 리스크도 마다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로봇기반의 교육모델은 새로운 한류상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로봇교사 어떤 일 하나 “저 로봇이 공부를 잘 가르친다고 칩시다. 그럼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은 도대체 뭐란 말이요?” 한 교장선생님이 전시장에 놓인 교육로봇을 보고 퉁명스레 내뱉은 말이다. 마치 유치원, 초등학교에 교육로봇이 보급되면 교사들의 입지가 그만큼 줄어들지 모르다는 불안감의 표현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쓸데없는 걱정이다. 교육로봇의 목적은 어린이에게 학습정보를 보다 재미있게 전달하고 교사들의 잡일을 줄여서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데 있다. 요컨데 교사와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도구가 로봇인 것이다. 교사는 로봇기반의 교육자동화로 여유가 생긴 시간과 정력을 학생들의 전인교육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교육콘텐츠를 고안하는데 사용하면 된다. 똑같은 수업내용을 하루에도 수차례씩 목이 쉬도록 반복하는 것이 21세기 선생님에게도 가장 중요한 역할로 남아있을 필요는 없다. 많은 고등학생들은 학교수업보다 입시전문학원에 가는 것이 성적을 올리는데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입시학원이 새로운 콘텐츠와 교습방법에 매달리는 동안 공교육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교육업체 메가스터디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교사의 역할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면서 “친구처럼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하고 학업에 성취감을 북돋우는 치어리더형 교사가 가장 존경받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교육부문에서 로봇이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는 분야가 무엇인지 정확히 지적한 말이다. 이제는 교육현장에서도 기계로봇보다 나은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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