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A씨는 미뤄왔던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냉동실에서는 2년도 넘은 냉동 고등어가, 냉장실 한 켠에서는 언제 구입했는지도 모르는 달걀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북미 최대 가전전시회인 ‘KBIS(Kitchen & Bath Industry Show)’에서 삼성전자는 이 같은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미래형 냉장고를 선보였다. 바로 인터넷 냉장고 등으로도 불리는 ‘RFID 냉장고’다. 현재 표준화 및 RFID 인프라 구축 미비 등이 걸림돌로 남아 있지만 이 제품이 보편적으로 상용화되는 것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똑똑한 미래형 주방의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냉장고의 변신은 무죄=이 전시회에서 선보인 삼성전자 미래형 냉장고는 보관 음식들의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탈착형 홈패드를 통해 이를 알려주고 냉동·냉장 어느 칸에 보관돼 있는지 위치까지 식별해 알려준다. 또 남는 식재료로 무슨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안내해 준다. 예를 들면 오이·당근·골뱅이·냉동닭이 냉장고에 있다면 골뱅이 무침과 닭볶음탕을 추천해 주는 식이다. 특히 냉장고에 부착된 LCD 컬러 화면을 통해 조리법을 안내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부족한 재료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기능까지 갖췄다.여기에 미래형 냉장고는 가전기기와 이동통신 기기를 연결하는 블루투스 무선통신 기술을 이용 탈착형 홈패드를 조리대에 올려 놓고 요리법을 볼 수 있다. 쇼핑을 나갈 때 어떤 먹거리를 사야 하는지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기능도 탑재했다. 이 같은 기능이 가능한 것은 바로 ‘유통혁명’의 진원지로 불리는 전자태그(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이 미래형 냉장고에 적용됐기 때문이다. RFID는 소형 칩과 수신장치 사이에 무선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기술로 생산자가 음식물이나 제품 등을 출고할 때 생산시점과 유통기한·보관방법 등 관련 정보를 소형 칩에 저장하기만 하면 냉장고 등에 내장된 센서가 자동으로 해당 정보를 전송받게 된다. 기존 바코드가 생산자와 판매자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RFID는 최종 소비자의 편의까지 고려한 완결형 제품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바코드를 대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RFID기술이 소형 칩 형태로 각종 가공식품 및 식재료에 부착되면 음식물을 냉장고에 넣는 것만으로도 해당 음식물 관련 정보가 자동으로 냉장고에 전송돼 이같은 혁신적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래형 냉장고 현실로=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칩 부착에 따르는 원가 부담 등으로 RFID칩을 부착하는 제품 보급이 보편화되지 않고 있지만 초기 적용단계를 거치면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존 바코드를 빠른 속도로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는 이미 관련 기술 특허를 다수 출원한 상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냉장고 등 가전기기의 기능이 더욱 지능화하고 있다”면서 “대형 식료품 마켓과 RFID 태그 부착에 관한 제휴 등까지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미 지난 2000년 인터넷 냉장고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홈네트워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인터넷 에어컨·인터넷 세탁기·인터넷 전자레인지 등 디지털 가전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 중이다. LG전자의 ‘인터넷 냉장고(MIR:Multimedia Internet Refrigerator)에는 착탈이 가능한 12인치 크기의 웹패드가 부착돼 이를 통해 TV·음악·인터넷·사진·메모·수첩·식품정보 등 첨단 홈네트워킹을 경험할 수 있다. ◇표준화 등 선결과제 남아=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요 가전 기업들은 RFID 냉장고 또는 인터넷 냉장고를 적극 시중에 판매하지 않고 있다. RFID 냉장고가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RFID 인프라 구축 및 표준화 등이 개선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역시 아직까지는 RFID 냉장고를 생소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천자홍 대우일렉 디지털신호처리연구소 부장은 “표준과 서비스 환경이 미비한 것이 미래형 냉장고의 본격적인 시장 형성에 걸림돌”이라며 “주요 가전 기업들이 LnCP 컨소시엄 등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구체적인 개선 노력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김유경기자@전자신문, yukyung@
◆홈네트워 가전 표준화 활동 인터넷 냉장고를 비롯한 홈네트워크 가전 활성화의 큰 걸림돌 중 하나가 표준이다. 이에 따라 주요 가전기업은 각사 제품 간 호환성 확보를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LG전자와 대우일렉은 홈네트워크 규격 공동 개발과 사용 확대, 공동 마케팅 등의 내용을 골자로 ‘전력선 통신 프로토콜 LnCP(Living network Control Protocol)’ 사업 협력을 체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05년 5월에는 총 32개 업체가 모인 가운데 LnCP 컨소시엄을 공식 출범시켰다. LnCP 컨소시엄은 기술 사용을 원하는 기업이면 누구나 사용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열린 컨소시엄을 지향한다. LnCP 표준 채택으로 대우일렉트로닉스와 LG전자 가전 제품은 100% 호환되며 지난 5월 말 열린 LnCP 컨소시엄 창립행사에서 대우의 전자레인지, LG의 냉장고가 호환되는 모습을 시연하기도 했다. 올해 안에 세탁기 등의 제품에도 LnCP를 추가로 적용할 예정이다. 또 컨소시엄은 산자부 공고 ‘전력선통신 국가표준’을 전적으로 수용함은 물론이고 조기 확산을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계획이다. 컨소시엄 활동을 통해 개발된 제품들은 현재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대우일렉 홈네트워크 연구소 전시관에 설치, 운영 중이다. 김유경기자@전자신문, yukyung@
◆기고-백색가전의 진화 가능성 -천자홍 대우일렉 디지털신호처리연구소 수석연구원 jchun@dwe.co.kr 냉장고가 내부의 식품 목록을 알아내 부족한 식품을 자동 주문하고, 냉장고 내의 식품을 이용하여 조리 가능한 요리를 추천하며 요리법도 알려준다. 전자레인지는 식품을 요리하는 데 가장 적당한 시간으로 자동 설정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전을 통해 가능해질 가까운 미래 주방의 모습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가전이 설치된 주방을 지금 주변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다. 사실 많은 업체에서 네트워크 가전을 개발 중이며 그 결과 몇몇 제품은 신규 건축 아파트나 빌라에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성에 비해서는 시장 규모가 미미한 상태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네트워크 가전에 네트워킹 능력을 이용함으로써만 가능한 새로운 기능이 제품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출시되고 있는 가전은 기존 제품에서 직접 손이나 리모컨을 통해 제어하던 것을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방이나 외부에서 제어하는 것이 위주가 된다. 하지만 이런 공간 극복 능력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네트워크와 연결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냉장고를 예로 들면 RFID 리더를 이용해 음식물의 종류와 제조일자 등을 알아내고, 이에 따라 원격 서버에 연결해 그 식품에 대한 각종 정보를 알아내는 기능이 이에 속한다. 둘째, 표준이 미비한 점도 과감한 투자에 제약이 된다. 표준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체 간에 각기 다른 형태로 연구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각각의 업체에서 생산된 물품이 다른 업체에서 개발한 환경에선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나게 됐다. 전력선통신 방식이 그 예다. 다른 업체에서 만들어진 가전이 서로 다른 통신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함께 사용하기 힘든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앞의 RFID 냉장고의 예를 들면 RFID 자체나 그 안에 기록되는 정보의 규격이 표준화되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셋째, 서비스 환경이 부족한 점을 들 수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홈네트워크 서비스가 지연되고 있어 제품을 구입해도 효용성이 적은 것이 문제다. 물론 서비스 사업자로서는 관련 제품이 적어서 홈네트워크 서비스 가입자 수가 적기 때문에 서비스에 투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의 냉장고 예를 다시 한번 들면 가전업체는 RFID가 붙어 있는 식품이 많이 있어야 RFID 냉장고를 판매할 수 있겠지만 식품업체로서는 RFID 냉장고가 많이 보급돼야 식품에 RFID를 붙이는 효용이 증가하는 식이다. LG전자·삼성전자·대우일렉 등 각 가전 제조사는 센서 네트워크 기능·원격 고장 진단 기능·인터넷 기능 등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제품을 점차 추가해 나가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홈네트워크활성화협의회 등을 통해 각종 표준화 관련 단체에서 진행하는 표준화 작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T·SK텔레콤 같은 서비스 업계는 홈네트워크 시범사업을 끝내고 상용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남은 문제들이 해결돼 소비자의 편의에 도움이 되고 관련 업계와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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