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재료산업 발전기반 마련을 위한 5대 전략과제의 방향은 ‘산업계 맞춤형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지원’이다. 정부 정책방향이 나열형에서 맞춤형으로 전환된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제품·공정·장비·재료 등 분야별로 독립적으로 추진되던 R&D 체계를 시장접근이 좀 더 용이하고 원천·실증 등의 수직적 개념을 포함하는 메트릭스 형태의 R&D 체계로 바꿔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정부는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2년여 기획 과정을 거쳤고, 장비·재료기업의 제품 개발과 판매를 위한 프로그램까지 내용으로 담았다.
이번 상생협약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재료 평가시스템(평가 팹)’ 구축 사업이다. 산자부 김남정 서기관은 “평가 팹 및 평가지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요 대기업들이 2015년까지 적어도 수천억원에 달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며 “결코 적지 않은 부담에도 대기업 사장단들이 ‘상생 협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요 대기업들의 부담도 크지만 효과 또한 대단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서기관은 “평가 팹 및 평가지원사업이 성공리에 이루어지면 국산화 등으로 인해 산업전체로 봤을 때 수백조에 달하는 효과가 예상되며, 숙원사업인 국내 장비·재료업계의 동반성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재료 산업의 취약점으로 원천기술부족·규모의 영세성 등이 자주 거론되지만 실제로 가장 큰 장벽은 ‘신뢰성 부족’에 있다. 대기업으로서는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한 장비·재료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엄청난 피해를 우려해 선뜻 국산장비·재료 채택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은 이같은 불신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수요 대기업들은 장비·재료 국산화에 따른 비용 절감과 더불어 해외 선진 기업들의 장비 무기화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분야에서의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은 지금까지 꾸준히 추진돼 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재료산업 육성’을 위한 협약식을 가지는 것은 그동안의 성과가 미흡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상생협력프로그램의 총괄위원장인 서울대 김형준교수는 이번 만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상생 협력사업은 대기업 윗선의 의지가 얼마나 명확하게 아래로 전달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대기업 사장단들이 주도적으로 참여를 선언한 이상, 최소한 반도체·디스플레이분야 만큼은 대·중소기업 동반발전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상생 협약에 임하는 수요 대기업의 의지는 어느때보다 굳건하다. 하이닉스반도체 최진석 전무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최종 제품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장비·재료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한편, 핵심 장비·재료를 앞세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해외 선진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장비·재료업체를 육성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번 상생프로그램에는 수요 대기업들이 인력과 설비를 기꺼이 중소 협력사에 제공할 정도로 단단한 의지가 베어있다. 동부일렉트로닉스 변영삼 부사장 “국내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장비·재료산업이 필요한 엔지니어와 장소를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것은 중소기업의 개발 의욕을 고취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수요 대기업들은 또 공동개발협약(JDP)을 맺고 중소협력사들을 지원키로 했다. 정부도 중소기업들이 핵심역량의 제품(장비·재료)를 만들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 지원을 약속했으며 평가 팹을 통해 개발된 제품을 평가·인증까지 하는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상용화를 위한 프로젝트도 동시에 진행돼 최첨단 장비·재료 기술 및 제품이 ‘개발에서부터 상용화까지’ 원스톱으로 관리된다. 삼성전자 고영범 전무는 “이사업이 시작되면 반도체소자·디스플레이 패널 기업과 장비·재료 중소기업 엔지니어간 활발한 기술교류로 장비재료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생을 위한 협약의 목표는 뚜렷하다. 반도체장비와 디스플레이장비의 국산화율 50%와 70%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를 주도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의 명성이 장비·재료분야로 이어지도록 해, 궁극적으로 소자·패널 강국을 넘어 산업 전반의 질적 향상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평가·인증사업의 경우 철저한 보안이 요구된다. 대기업으로서도 중소기업으로서도 자신들이 가진 핵심기술이 어떤 형태로든 경쟁사에 전해지게 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충분한 예산확보다. 특히 이번 ‘반도체장비 원천기술상용화’의 경우 아직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또 핵심 고유 기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장비·재료도 대기업별로 거래처를 엄격하게 구분해 관리하는 관행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사이드박스> 상생 협력사업 어떤게 있나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과 대기업 6사 대표가 15일 체결한 ‘반도체·디스플레이 대·중소 상생협력 협약’는 △장비·재료의 성능평가 및 인증 △수급기업펀드를 통한 설비투자 지원 △차세대 장비 상용화기술 공동개발 등 3대 상생협력사업의 효과적 추진이 핵심이다. 3대 상생협력사업의 기본 방향은 반도체·패널 등 대기업의 수요측면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전세계 밸류체인(재료-장비-완제품)을 통합 석권하자는 것이다. 즉 삼성·LG·하이닉스 등 수요기업의 막대한 설비투자 계획과 연계한 분야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모델을 수립하는 것으로, ‘원천기술, 납품 불확실성, 자금 부족’ 등 장비·재료 업계의 3중고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재료 평가시스템(데모 팹) 구축=평가시스템은 수요 대기업의 일괄 생산라인을 활용, 중소업체 장비·재료와 이미 구축된 장비·재료의 수율, 신뢰성 등을 비교·평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요 대기업은 일정규모의 공간(반도체의 경우 30평, 5개 장비 기준)과 전문 인력(장비당 최소 2명)을 제공하고, 평가과정을 거쳐 일정요건을 충족할 경우 해당 장비·재료에 대한 평가 인증서 수여한다. 반도체분야에서는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동부일렉트로닉스 등 국내 팹 3사가 모두 참여한다. 중소기업은 웨이퍼 한장 당 50달러의 비용만을 부담한다. 중소 장비·재료업체는 대기업이 발행하는 평가 인증서를 토대로 글로벌 납품 보장 및 자립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사업추진단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계열화된 협력업체 및 구매를 확정한 장비·재료들은 시험·평가를 지원했으나, 구매 이전 단계의 시험·평가는 전무했다. 평가절차는 △해당 장비별 기본특성 평가(5개월) △실제 가동중인 공정라인을 통해 생산수율 평가(6~7개월) △양산라인 투입을 전제로 한 신뢰성 평가단계로 이뤄진다. 디스플레이는 파견을 통한 평가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수급기업투자펀드 발행=수급기업투자펀드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소재 기업들이 신용과 기술력만으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 사업은 이미 지난 2003년 9월 반도체·디스플레이 32개 중소기업과 6개 대기업간 ‘설비투자-구매 협력약정 체결’로 일부 진행돼 왔으나, 올해 이를 대폭 보강했다. 우선 삼성전자, LG전자, 하이닉스 등 3개사가 총 65억원을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출연하고 정부예산(중산기금 500억원)을 더해 총 1500억원 규모의 수급기업펀드를 조성한다. 특히 지난해 2340억원이 지원됐던 수급기업펀드가 자산유동화증권 발행방식이었으나, 올해부터 지원방식이 보증부 대출방식으로 전환돼 자금의 질이 대폭 개선되고 경영권 부담이 제거된다. 금리도 지난해 평균 10.7%에서 올해는 각종 수수료를 포함해 4.8%(3년 만기)로 낮아진다. ◇32-45나노급 차세대 반도체장비 원천기술 상용화 지원사업=산학연이 보유하고 있는 원천기술을 중소 장비업체에 이전해 32-45나노급 전공정 반도체 제조장비의 상용화를 추진한다. 수요-장비업체 공동 또는 수요-장비업체-학·연 컨소시엄의 형태로 진행되는 이 사업에는 내년부터 5년간 총 2500억원(정부 1750억원, 07년 35억원 예산 신청)이 투입된다. 이를 위해 정부, 수요업체, 산학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차세대 나노반도체 제조장비 실용화 사업단’이 만들어진다. 특히 개발된 장비는 수요 대기업 양산라인에 투입돼 개발제품의 신뢰성 확보 및 나노기술집적센터 등 기존 구축된 국가 기반 설비를 활용한 평가가 병행된다. 또 장비업체와 수요기업간 구매협력 MOU 교환에 따라, 판매처 확보 및 수요기업의 기술개발, 테스트, 융자자금 우선 지원 등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이 사업으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수입대체 11조원, 수출 13조원, 고용 5만명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대기업의 상생전략 ◇삼성전자 ‘협력사 종합경쟁력 향상을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맞춤형 지원’ 삼성전자는 ‘협력사 종합 경쟁력 확보 지원’이라는 명제 아래 △로드맵 공유를 전제로 하는 협력사 지원전담조직 운영 △6시그마 공동과제 추진 및 경영자 2세교육을 포함하는 경영선진화·인력양성지원 △프로젝트당 삼성직원 40∼50명을 투입하는 기술개발 지원·지도 △ERP구축 등 경영인프라지원 등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특히 장비재료분야에서는 국산화지원전담조직을 통해 과제발굴, 자금지원, 기술평가지원, 개발완료, 차세대연계라는 프로세스를 정착시켜 나간다. 실제로 크린룸 140평·평가설비 연간 25∼30대를 갖춘 반도체 평가 팹을 구축, 연간 674억원의 평가비용을 끌어 안으며 장비·재료 국산화에 총력을 쏟는다. ◇LG전자 ‘협력회사 경쟁력강화 및 동반성장’ =LG전자의 상생협력은 자금지원확대, 교육·기술지원, 컨설팅 및 IT인프라 구축, 인력지원이 골자다. 협력회사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해 지난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했으며 하도급 협력회사 현금성 결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중견인력이동제를 실시해 연봉의 60%는 LG전자가 지원하면서 노하우를 가진 인력을 중소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또 신규거래신청절차를 투명화해 협력사 선정에 공정성을 기하고 있다. LG전자 이교원 부장은 “자연생태계의 꽃과 벌 관계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꽃가루와 꿀(지속적 가치)를 공유하며 협력해야 하고 LG전자도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반도체 ‘세계 최고의 국산화를 위한 하이닉스의 의지’ 하이닉스는 300㎜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장비·재료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006년 현재 300㎜ 장비 국산화율은 21%(장비기종 기준), 재료 국산화율은 49%(총구매금액기준)다. 현재 300㎜ 장비 국산화를 추진되고 있는 것만도 총 13개사 15개 품목이어서 국산화율은 향후 2∼3년 후 급속히 높아질 전망이다. 하이닉스는 국산화를 위해 ‘2+1와 1+2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은 외국 업체 2곳 이상이 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 1단계로 국내 업체 하나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2단계로는 외국업체 1곳을 줄이고 국내업체가 2곳이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진석 하이닉스 전무는 “2015년 세계 반도체산업 2위 강국 건설이라는 정부 목표 실현에 하이닉스가 선봉장이 되겠다”며 “세계 최고의 메모리 기술로, 최고의 내 나라 장비를 만드는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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