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는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IT강국· 강소형 국가를 이야기할 때 빼 놓지 않고 등장하는 나라가 바로 아일랜드다. 지금도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우리에게도 좋은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지사에 출마한 한 정치인이 경기도를 ‘아일랜드형 강소 지역’ 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아일랜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우리가 아는 상식 수준의 아일랜드는 80년대까지 후진국이었지만 정보통신·IT산업에 집중 투자해 10여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로 올라선 유럽의 잘 사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다.
아일랜드는 영국 런던에서 1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면 도착한다. 수도 더블린은 유럽 특유의 고딕풍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느 유럽 지역 도시가 그렇듯 조용하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IT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한적한 관광 도시를 연상할 정도다. 경제 기반도 취약하다. 특별한 자원도 없고 인구 400여만명으로 내수시장 기반도 강하지 않다. 인구로 따지면 남한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라 크기는 한반도 전체의 3분의1 수준이다. 걸어 온 길도 순탄치 않다. 아일랜드 근대사 200여년을 포함해 800여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 왔다. 지금도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로 갈라진 ‘분단국’이다. 아일랜드는 독립 국가지만 북아일랜드는 아직도 영국에 편입한 지역이다. 한 지역 두 나라인 셈이다. 물론 우리처럼 남북이 완전히 갈라져 있지 않고 이주를 포함해 자유로운 교역과 왕래까지 가능하다. 이 작은 나라가 2004년 기준으로 1인당 국내 총생산(GDP) 3만달러를 올리며 유럽 연합(EU) 4대 부국을 일궈 냈다. 아일랜드는 특히 지난 90년대 IT·SW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면서 고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보통신 산업의 비중이 GDP의 30%, 소프트웨어 비중이 14%에 달할 정도로 IT부문이 국가의 중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빈국’ 아일랜드가 10여년 만에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부국으로 성장한 데는 적극적인 외부 투자 유치가 결정적이었다. 2002년 말까지 아일랜드가 유치한 외국인 투자 금액은 1572억달러. 아일랜드 국민 1인당 투자 유치 금액이 4만달러에 달하는 셈이다. 이는 동유럽 국가 중 가장 앞서간다는 헝가리의 무려 15배 수준이다. 여기에는 투자 기업을 위한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있었다. 지금은 일부 법인세를 받고 있지만 초기에는 아예 법인세가 없었다. 정보통신 산업 육성 기관의 하나인 ICT 캐서린 라엘 이사는 “아일랜드에 외국 기업은 국가 경제를 떠 받치는 든든한 파트너”라며 “다른 유럽 지역과 차별화를 위해 법인세를 포함한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탄탄한 고급 인력도 한 몫을 했다. 아일랜드 노동력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IMD)에서 세계 최고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교육 투자 효율성 지수’를 산출한 결과 아일랜드가 체코·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지난 93년 16%에 달했던 실업률을 2003년 4.4%대로 낮춘 것도 이런 높은 교육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아일랜드는 영어권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 식민 지배를 통해 모국어보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세계 무대로 곧 바로 뛰어들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된 것. 아일랜드는 최근에도 연간 9%에 이르는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원동력은 ‘유럽 SW 수도’라고 할 만큼 성과를 보이고 있는 SW 산업 성장에 힘입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세계 SW 10대 기업 중 7개가 SW를 개발· 제작하는 상황이다. OECD 기술전망 보고서는 “아일랜드는 유럽 소프트웨어 산업 제조와 생산 기지로 자리 잡았으며 전체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40%,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아일랜드는 글로벌 SW 기업의 천국이다. 이미 1200여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 중 800여개가 넘는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생산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해 소프트웨어 수출액만 120억유로를 넘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세계 윈도 운영체계 패키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이 곳에 있다. MS는 생산 기지로 아일랜드를 활용할 뿐 아니라 4년 전에는 특허료 수입 사업을 벌이는 ‘라운드 아일랜드 원’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델· IBM· HP 등도 유럽 지역 본부와 연구개발 센터를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결국 아일랜드에 들어온 첨단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수 많은 인재가 배출되고 이들이 다시 아일랜드 기업으로 돌아 오면서 토착 산업이 발전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아일랜드가 대표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아일랜드에서는 최근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관련 산업 분야에서 매년 100% 이상의 초고속 성장세를 나타내는 기업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대표 업체로 반도체 설계 분야의 엑실(Xsil), 소프트웨어 업체 하복(Havok)·아이오나 테크놀로지스(Iona)·로코코 소프트(Rococo)·암베오(Am-Beo)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02년부터는 수도 더블린 안에 IT클러스터 일종인 ‘디지털 허브’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소프트웨어 공제조합 양재원 전무는 “아일랜드는 여러 면에서 우리와 닮은 꼴” 이라며 “앞으로 우리 경제의 기반은 지식 산업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인 차원에서도 아일랜드처럼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SW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SW 수도’로 2004년 5월 EU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의 새로운 나침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블린=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SW강국, 아일랜드 비결은 아일랜드 SW 경쟁력은 정부 정책과 교육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외자 유치와 관련해서는 ‘해외 투자 산업 개발청 (IDA)’의 역할이 컸다. IDA는 투자 신고에서 공장 용지 선정, 자금 조달, 외국 기업 근로자 자녀 학교 문제 등 아일랜드에 진출하려는 모든 기업을 지원해 주는 기능을 맡고 있다. IDA가 공격적으로 해외 기업을 유치하면서 유럽에 진출한 미국 전체 기업의 25%가 아일랜드에 투자했다. 2000년 부터는 해외 투자유치 방향을 IT와 지식 기반 기업으로 집중하고 있다. 자국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일랜드 기업진흥청인 ‘엔터프라이즈 아일랜드(EI)’도 국내 기업을 육성하고 해외 진출하는데 편의를 봐주기 위해 생긴 조직이다. EI는 아일랜드 곳곳에 창업 인큐베이션 센터를 만들고 기술을 보유한 신생 기업이 사업을 시작하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을 전문으로 육성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진흥청 (ISA)’과 ‘정보통신기술원 (ICT)’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들 단체는 대학 연구소는 물론 외부 기술까지 발굴하고 이를 상업화해 토착 기업에 전수하는 등 아일랜드 기술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부존 자원이 없는 아일랜드가 경제 발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을 키우고 첨단 기술 개발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아일랜드 교육 시스템도 벤치마킹 대상이다. 국립 대학 ‘DCU (Dublin City University)’는 20여년 밖에 안 된 종합 대학이지만 아일랜드 최고 명문으로 떠올랐다. IT와 바이오 등 주로 첨단 산업과 관련한 비즈니스 교육에 집중하면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별도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의 연구와 개발, 창업을 지원하는 것도 돋보인다. 1592년 세워진 유럽의 명문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도 교과 과정을 개편 중이다. 더블린 수도 한 가운데 있는 트리니티 대학은 신학·철학·역사학 등 순수 인문학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학교는 지금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 단지 ‘사이언스 파크’를 건립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이 조성한 ‘실리콘 밸리’ 같은 산학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지난 2003년부터 인문·사회과학을 비즈니스에 접목해 가르치는 쪽으로 교과 과정을 개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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