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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 10년, 그리고 미래]가입자 3800만…삶이 바뀌었다


카테고리 : 레포트 > 기타
파일이름 :20060420-.jpg
문서분량 : 1 page 등록인 : etnews
문서뷰어 : 뷰어없음 등록/수정일 : 06.04.17 / 0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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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 10년, 그리고 미래]가입자 3800만…삶이 바뀌었다
본문일부/목차
이제는 새벽 잠을 깨우는 알람시계도, 하루의 일정 관리도 휴대폰이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별도의 전화번호 수첩도 필요없다. 휴대폰이 모든 개인 정보관리의 대명사가 됐다. 이에 휴대폰은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휴대폰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하고, 게임이나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부재로 인한 불안감과 답답함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요즘 같은 모바일 세상에선 휴대폰이 없다는 것은 곧바로 세상과의 단절로 이어진다.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 CDMA 기술을 상용화한 지 불과 10년 만에 우리네 삶의 풍속도가 달라졌다. 요즘 세대들에겐 이동통신은 곧 일상이자 ‘나’로 여겨질만큼 생활패턴을 바꿔버린 것이다. 라이프스타일마저 뒤흔든 변화에는 이동통신이 우리나라 경제에 가져다 준 엄청난 파급효과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우리나라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총 인구의 약 78%에 달하는 3873만2671명. 오는 연말께면 이동전화 인구 4000만명마저 돌파할 기세다. CDMA 상용화 이후 10년 만에 가히 전국민 이동전화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한국이 이룩한 CDMA 성공신화는 오히려 해외 시장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3분기 현재 세계 CDMA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무려 2억8000만명으로,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의 14%에 달한다. 유럽형(GSM) 기술방식이 주류였던 세계 이동전화 시장이 한국 덕분에 CDMA대 GSM 양대축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이다. 수출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휴대폰 단일 품목 수출액은 총 190억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20조원 규모에 육박했다.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국내 제조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20%대에 달한다. 또한 국책연구기관인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분석에 따르면 CDMA 기술은 지난 1996년 상용화 후 2001년까지 5년간 약 125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42만명의 고용유발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기간에 ETRI가 미국 퀄컴사에서 거둬들인 CDMA 관련 기술료 배분금액도 1억25만여달러에 육박한다. 국내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연구개발 결과를 통해 얻어진 기술료 수입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국이 이동통신 최강국을 자임하는데는 가입자 규모나 시장, 수출 원동력 등 비단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 신규 서비스와 콘텐츠, 솔루션을 선보이면서 이동통신의 진화를 질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세계 시장에서도 그 추세가 가시화하고 있는 테마는 ‘컨버전스’다. 국내 이동통신산업은 금융·방송 융합 서비스를 가장 먼저 선보였고, 이어 미래 유비쿼터스 서비스로 변화·발전하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이미 지난 2001년 휴대폰 내장형 칩카드에 무선인터넷 전자상거래와 실물 신용카드 기능을 내장한 서비스를 출시한 데 이어 조만간 상용화하는 고속하향패킷전송(HSDPA) 서비스에는 교통카드 결제기능까지 구현할 예정이다. 휴대이동방송 서비스는 근래 이동통신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위성DMB폰을 상용 출시한 우리나라는 올 초 지상파DMB 폰도 가장 빨리 선보이며 유럽의 DVB-H와 미국 퀄컴의 플로에 맞서 차세대 휴대이동방송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태세다.
 이와 함께 음악·게임·영화 등 디지털 콘텐츠 영역과도 빠르게 접목되면서 콘텐츠 시장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유무선 음악·게임 포털은 이제 이동통신 서비스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메뉴가 됐고, 덕분에 콘텐츠 시장에도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전자태그(RFID)·센서 기술과 결합, 이동통신이 이른바 유비쿼터스 환경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디지털홈·RFID·u시티 등 미래를 향한 실험적 시도들이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국내 CDMA 산업은 국가경제의 차세대 먹거리 발굴을 위한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CDMA 도입 배경
 “성공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
 지난 91년, 디지털 이동전화의 표준화 방식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으로 결정된 당시를 두고 한 말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80년대 초반 T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전화를 도입, 유럽국가보다 이동통신 기술이 앞서 있었다. 디지털 분야 전환에서 북미에 뒤진 유럽 국가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TDMA 방식 공동 표준을 만들기로 합의했으며, 그 결과물인 ‘글로벌표준모바일(GSM)’이 태동, 상용 서비스가 제공된 지 2, 3년 정도 지난 시기였다. 그렇다면 무선 분야에서 어떠한 기술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 어디서도 상용화되지 않은 CDMA 방식의 독자 이동통신 기술 개발 카드를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TDMA 원천기술 줄 수 없다”=아날로그 이동전화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86년 아시안게임 때부터다. 당시 100만원을 넘는 모토로라 휴대폰 가격은 이동전화가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아날로그 이동전화는 88올림픽을 지나며 가입자가 폭증, 전화불통이 사회문제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아날로그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모토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서비스 개선을 제시했지만 정부나 연구계 대부분 근원적인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디지털 방식의 이동전화 도입을 결정, 기술 채택을 남겨두고 있던 당시, 대세는 당연히 TDMA였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TDMA 원천기술 이전 요구를 수용한 국가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체신부 관계자나 ETRI 기술이전팀 인력들은 미국이나 유럽 통신사를 찾아 기술이전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이유는 우리나라가 원천기술 개발 능력이 없다는 것.
 반제품 형태로 사가라는 ‘충고’만 돌아왔다. 물론 속내는 우리나라를 ‘시장’으로 둬야 한다는 기술강국의 계산이었다. “만약 당시 어느 단 한 국가라도 TDMA 기술이전을 합의했다면 우리는 ‘가능성 제로에 가까웠던’ CDMA 방식을 무리하게 도입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정부 관계자의 회고를 지금에서 돌이켜볼 때 미국이나 유럽 통신사들은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통상압력으로 이어진 외국기업의 노골적인 방해=TDMA 기술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CDMA 도입 결정이 환영받은 것도 아니었다. 특히 당시 시장을 주도하던 주요 외국 통신장비사는 CDMA 상용화는 자국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한국 통신 시장은 에릭슨·루슨트·모토로라 등 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지난 89년 국내 아날로그 이동전화 시장은 10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면서 모토로라가 연간 5000억원어치의 단말기를 팔던 시기다. 수입다변화 조치로 일본 제품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던 터라 미국 휴대폰은 독점과 매한가지. 국내에서 판매되던 모토로라 단말기는 미국 시장보다 최소 30% 비쌌다.
 이런 이유로 당시 미국 출장자 사이에서 ‘휴대폰을 하나 사오면 비행기표값을 건진다’는 말이 유행하면서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모토로라는 자국 내에서 판매되는 단말기와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는 단말기 색깔을 구분했으며, 출장길에서 사온 미국 제품에 대해서는 사후서비스를 하지 않는 조치를 내릴 정도였다. 당시 국내 통신시장에서 연간 3억달러를 벌던 루슨트나 TDMA 및 GSM 종주국의 대표기업인 에릭슨 역시 CDMA 상용화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이들 기업이 96년 CDMA가 상용화된 이후까지도 통상압력과 같은 국가 차원의 ‘압력’과 국회 및 정부 대상 ‘로비’를 벌였다는 것은 이 분야에 관계했던 이들이라면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때문에 당시 개발자들 사이에서 CDMA는 ‘시끄럽고(C) 더럽고(D) 메슥거리고(M) 아니꼬운(A)’ 기술로 통하기도 했다. <신혜선기자>
 
◆오스트리아 여배우가 만든 기술이란 걸 아시나요 
 지난 194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섹스심벌이었던 여배우 헤디 라마. 그녀는 우리나라에도 영화 삼손과 데릴라의 여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에게는 화려한 여배우로서의 이력뿐만 아니라 숨겨진 이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오늘날의 CDMA 기반 기술의 최초 개발자가 그것.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헤디 라마는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1933년에 결혼을 했다.
 결혼 상대는 유럽 최대 무기 생산업자 프리츠 맨들. 그는 지나치게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라마를 잠시도 혼자 두지 않았다. 하녀를 시켜 감시하고, 심지어 자신의 비즈니스 미팅에도 데려갈 정도였다. 맨들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결혼 4년 만에 그녀는 런던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MGM 영화사 관계자를 만나 미국으로 건너온다. 미국으로 건너와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라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만난 친구인 작곡가 조지 앤틸과 함께 CDMA 기술의 근간이 되는 확산대역(spread spectrum) 기술을 고안해 낸다. 이 기술은 어뢰의 전파 유도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주파수에 변화를 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라마가 맨틀의 비즈니스 미팅에 함께 다니며 들었던 무선 주파수 기술과 앤틸의 기계에 대한 지식이 결합돼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확산대역 기술은 특허만 받고 실제 사용되지는 못했다. 이후 과학자들이 꾸준히 이 기술을 연구해 1962년 마침내 군사용 상용기술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이동통신 기술의 핵심인 CDMA 근간이 됐다. <권건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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