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SW) 강국으로 발돋움을 시작했다. 아직 글로벌 수준과 격차는 있지만, 업체와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해외 시장도 개척하기 시작했고, 내수에서 외국업체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 플레이어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도약의 모멘텀이 필요하다. 전자신문은 4회에 걸쳐 우리나라보다 앞서 SW 강국을 만든 이스라엘, 인도, 아일랜드 등과 SW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는 루마니아를 통해 국내 SW 산업이 나아갈 길을 조명한다.
‘우유와 꿀의 나라에서 과학과 기술의 나라로’ 국가가 설립된 59년 초기만 해도 우유와 꿀 등 전통적인 1차 산업이 전부였던 이스라엘은 현재 최첨단 기술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텔아비브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 모토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를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에서 개발하는 기술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으다. 천연자원이 전무하고 700만명의 인구밖에 안 되는 이스라엘이 최첨단 기술의 나라로 인정받는 배경에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있다. 텔아비브를 비롯해 예루살렘 등 벤처캐피털의 자금을 받아 운용되는 소프트웨어 업체 수가 700여개에 달하는 등 전체 하이테크 회사가 3000여개가 넘는다. 1년에 100∼150개의 새로운 기업이 들어서고 기술 인큐베이트 프로젝트만 연간 200여개가 넘는다. 사실 이 숫자만으로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불리는 데는 무리가 있다. 숫자상으로 이 정도 규모를 갖춘 나라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나스닥 시장에 기업공개를 한 소프트웨어 업체 수만 해도 130개가 넘고, 체크포인트·매직소프트웨어·머큐리인터액티브·시마트론·포뮬러시스템즈 등 각 분야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글로벌 회사가 있다는 점을 알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프트웨어 산업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소프트웨어 산업의 전체 시장규모는 1994년 8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43억5000만달러까지 이르렀다. 수출 규모도 1994년 2억2000만달러 수준에서 지난해는 33억600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이스라엘이 초기부터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부각받은 것은 아니다. 1980년대만 해도 농업이나 섬유업이 국가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농산품이 감귤류의 수출액보다 소프트웨어 수출액이 1400만달러 정도 많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33억6000만달러를 차지하며 이스라엘 최대 품목으로 부각돼 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불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지원(R&D와 투자) △벤처캐피털의 지원 △풍부한 고급인력 풀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현지에서 만난 이스라엘 전자 및 소프트웨어 산업 연합회 회장 아미람 쇼어 회장은 “이스라엘이 소프트웨어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지원정책과 벤처캐피털의 지원이 큰 엔진이 됐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정책은 크게 투자촉진과 해외 수출 지원으로 요약된다.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것은 치프 샤이언티스트(Chief Scientist) 정책이다. 이 정책은 정부 각 부처마다 소프트웨어 및 첨단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인력을 별도로 뽑아 전문적으로 업체지원을 전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각 부처의 치프 샤이언티스트 조직은 텔아비브에 있는 무역센터 한 곳에서 근무하면서 좋은 소프트웨어 업체를 뽑아 자금 지원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벤처업체의 자본지원을 위한 해외 정부와의 협력도 눈에 뛴다. 이스라엘-미국 양국간 산업연구개발재단(BIRD-F)를 만들어 최대 150만달러까지 지원해 산업연구개발 진흥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캐나다 정부와도 펀드(CIIRdf)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마케팅 강화와 경영관리 역량에 초점을 맞춰 해외 마케팅 촉진기금을 지원한다. 중소규모 이하의 기업에 한해 정부가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마케팅 활동 비용 등을 분담하는 것이다. 벤처캐피털의 역할도 크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털 업계가 투자하는 것 중 가장 많은 분야는 30%를 조금 웃도는 통신분야이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도 20%∼30%대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의 수익성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대표적인 벤처캐피털 회사 요즈마그룹의 이갈 에르릭(Yigal Erlich) 사장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고급 인력이 많은 것도 이스라엘 소프트웨어 산업의 강점”이라고 덧붙인 그는 “구 소련 유대인들의 이민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1989∼1992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소련에서 이민 온 유대인만 45만명에 달하며 이들의 학력수준이 꽤 높아 현재의 고급인력 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스라엘의 과학자 및 엔지니어 비중은 세계 최고다. 이스라엘의 인구 1만명당 과학자와 엔지니어 수는 140명. 2위 미국 83명, 일본 80명, 독일 60명, 캐나다 55명 수준과는 1.5∼2배 가량 차이난다. 기업의 R&D 투자도 만만치 않다. OECD 국가 중 이스라엘에서 GDP의 1% 민간 기업의 R&D 비용을 보자. 이스라엘은 4.5%로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2위인 스웨덴 4.1%, 일본 3%, 핀란드 3.4% 수준보다 훨씬 높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글로벌 전략도 소프트웨어 강국의 밑거름이 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수출 지향 정책을 펼치고 초기부터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기업을 운용하고 있다. 또 인수합병(M&A)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도 이스라엘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시켰다. 비젼테크, 뉴디멘션소프트웨어, DSP커뮤니케이션 등 해당 분야의 최고 업체들이 다른 글로벌 컴퓨팅 업체로 인수합병에 쉽게 응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매트릭스의 길리 론 부사장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으로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최고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등 선순환 구조가 현재의 이스라엘을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르뽀체크포인트 이스라엘 라마트 간 텔아비브 시내에 위치한 세계적인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 ‘체크포인트’ 본사. 공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 회사는 텔아비브의 가장 유명한 건물 다이아몬드 센터가 있는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다. 보안 회사답게 출입구부터 보안이 철저하다. 7층 대회의실에 들어서자 도리 셀라 인터내셔날 필드마케팅 이사가 반갑게 맞았다.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 에 기술적인 질문은 말아달라”고 웃으며 회사소개부터 먼저 시작했다. 체크포인트는 1993년 설립돼 1400여명의 직원을 둔 세계 최대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는 시장 가치가 52억달러에 달한다. 2005년 매출액이 5억7940만달러로, 2005년 12월 현재 현금 보유액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28개국 69개 지사와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89개국 220여개 협력사를 두고 있다. 현재 포츈지 선정 100대 기업의 100%, 포츈지 500대 기업 98% 를 포함해 약 1만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셀라 이사는 체크포인트가 보안 분야에서 가장 우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 상황과 민족성과 연관해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공항에서부터 삼엄한 심문을 받고 입국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여권 등 기본적인 서류를 갖췄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왜 이스라엘에 입국하려는지’를 묻는다. 출국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짐을 다 풀어 헤칠 정도로 보안이 삼엄하다. ‘일단 의심하고 무조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국민성은 보안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체크포인트는 회사 설립때부터 글로벌 회사를 지향했다. 1994년 첫 제품 ‘파이어월-1’을 출시했는데,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에서 선보였다. 창업 때부터 글로벌 회사를 만들겠다는 비전하에 설립한 지 2년 만인 1996년 나스닥에 기업공개도 했다. 셀라 이사는 “체크포인트의 성공 비결은 꾸준한 기술개발과 최고의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1400여명의 직원 중 이스라엘 본사와 미국 캘리포니아 본부의 개발자 및 엔지니어는 850여명 수준이다. 이들 인력이 꾸준히 보안 분야에만 중점을 둬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점유율 30%를 넘어서며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체크포인트 측 설명이다.
◆인터뷰-도리 셀라 이사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죠. 그래도 계속 문을 열어놓고 있을 것입니다.” 도리 셀라 이사는 최근 체크포인트가 미국 소스파이어를 2억2500만달러에 인수하려다 실패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난 2002년부터 회사의 외형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이번 인수합병이 추진됐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으로도 이런 인수합병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의사를 보였다.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 가장 큰 성공요인입니다.” 셀라 이사는 체크포인트가 성공한 배경에는 ‘보안’이라는 틈새시장을 노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는 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 틈새시장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곳에 뛰어들어야 하며, 초기부터 내수가 아닌 글로벌 진출을 노리고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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